오늘 산타마리아 해변으로 가기로 했는데,

아침을 먹을 때부터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같은 방을 썼던 혜원이는 오늘 떠난다고 어제 정성스레 빨래를 해서 널었건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 옷들을 몽땅 적셔버렸다. 서둘러 걷어 방법을 찾아본다.

급한 마음에 류씨언니에게 드라이기를 빌려서 말려보지만 그리 쉽게 마를 것 같진 않다.

어쩔 수 없이 옷가지들을 챙겨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누군가가 떠난다는 사실은 많이 아쉬운거다.

혜원이가 떠났고, 배웅을 해준 경서오빠는 혜원이가 20MN에 공항까지 갔다고 한다.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콜렉티보 택시를 타고 가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바로 가는 건 아니고 합승은 당연하고 여기저기 들려서 가는데

공항 출국장 입구가 아니라 먼 곳에서 세워주는 곳도 많다고 한다.

돈을 아끼기에는 정말 좋은 방법이지만 사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기엔 힘들다.

 

아무든 어린 나이에 혼자서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한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남미를 여행했을 때 23살이었는데 혜원이는 22살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여행 인프라가 정말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이렇게 장기간을 홀로 다닌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쿠바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난 쿠바만 한달 여행을 왔다고 하니 다들 남미로 내려가고 싶지 않냐며

남미가 더 좋다며 꼭 가보라고 하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운이 아주 좋았던 것 같다. 남미를 무려 9년전에 다녀왔다. 조금만 지나면 10년이다.

그 덕분에 일찍 제 3세계라고 하는 남미를 경험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 (이 쪽으로)

9개월 간의 남미 여행동안 만났던 한국 여행자가 총 4명이었으니 참 많이도 변했다.

지금은 쿠바의 우리 숙소만해도 엄청나게 많은 한국 여행자가 있다.

 

 

 

 

 

 

아쉽지만 일단 산타마리아로 가기로 한 계획은 취소되었다.

누님들께서 점심 때 수제비를 할거라며 801호로 초대해주셨다.

아침밥을 먹고나서 이오바나 아줌마네 거실에서 빈둥빈둥 거리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밑으로 내려갔다.

 

들어가니 따끈 따끈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파전이 놓여있었고

가지무침과 양배추로 만든 귀한 김치도 있었다.

재료가 없으니 없는대로 준비하셨다고 한다.

 

 

 

 

 

 

국자 대신 커피잔으로 수제비를 그릇에 담아주시는 이선 누님.

한달 동안 더운 나라에 있다보니 따뜻한 국물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것도 비오는 날에 먹는 수제비라니 금상첨화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난 김치를 안먹기 때문에 해외에 나와 있어도 한국음식을 많이 그리워하지 않는 편이긴 하다.

그리고 쿠바로 올 때는 한식당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음식에 대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님들이 준비해주신 수제비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여기서 한국음식을 먹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감사 또 감사하게 한입 한입 먹었다.

 

 

 

 

어제 체게바라가 그려진 3페소짜리 지폐에 대한 이야기나 잠깐 나왔었는데

나는 구겨진 지폐밖에 구하질 못해서 깨끗한 지폐를 가지고 싶다며

어디서 구하면 되는지에 대해서 다니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다니엘이 선물이라며 '짠!'하고 무언가를 나누어 준다.

엄머, 3페소짜리 새 지폐다. 함께 적어준 다니엘의 메모가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쿠바에 와서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난다.

이번 여행에 있어서 나의 목표는 여기서 함께한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이 되었다.

지금도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생각이 나는 대로 계속 전하고 있다.

 

점심식사가 끝났지만, 우리는 어디로도 나가지 않고 모두들 801호에서 떠들고 놀고 있다.

누님들이 정성스레 태워준 모카골드 커피를 후르릅하며 쿠바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비는 멈췄지만 우리의 수다는 멈추지 않았다.

 

쿠바의 먹거리라고 하면 역시 대표적인 것은 랍스터다.

그만큼 여기가 저렴하기 때문에 얼마에 먹었나, 얼마나 먹었나가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맛있는 랍스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다니엘이 추천하는 레스토랑에 전화를 했더니

오늘 랍스터가 들어왔다는 아주 행복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 모두는 박수를 쳤고, 오늘 저녁식사는 랍스터로 정했다.

두시간 정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6시 반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아바나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Los Nardos.

우리가 갔을 때는 줄이 없어서 바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줄이 정말 길었다.

(가실 분들은 6시 30분 이전으로 가세요!)

 

이유는 홀 서비스가 느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주문하기까지 30분,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30분이 걸렸다.

우리가 식사를 다하니 약 2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더 웃긴 건 계산서를 달라고 하니 1분도 안걸린 것 같다. 하하

 

 

 

 

레스토랑 분위기는 정말 좋다.

쿠바에 와서 가장 고급스런 분위기의 레스토랑인 것 같다.

손님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빵과 함께 먹는 콩요리, 랍스터 구이, 크림소스 랍스터, 빠에야를 주문했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빵과 콩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콩 안먹는데 고소한게 정말 괜찮았다.

랍스터는 안타깝게도 오늘 생 랍스터는 없고 냉동만 있다고 하여 그것으로 주문했는데

냉동이다보니 소금을 뿌리지 않아도 짠 맛이 그대로 난다. 좀 많이 짰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빠에야다.

어제 Europa에서 먹었던 빠에야보다 더 저렴했는데 맛이나 비주얼은 훨씬 뛰어나다.

오늘 저녁 식사는 대만족이다. 기분 넘 좋아!

 

어제 저녁식사가 너무 부족했다며 박수 오빠가 오늘 식사도 사주셨다.

오빠와 언니가 어떻게 여행하는지를 내가 다 봤는데..

얻어먹기가 굉장히 죄송했지만 그래도 넙죽 넙죽 받아먹었다..

사실 오늘이 박수오빠와 류씨언니와 함께 먹는 마지막 식사였다.

우리의 일정도 이렇게 모두 끝나갔다.

 

 

 

 

우리 뒤에 있던 테이블에서 계산서를 두고 가고 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오더니 뚜껑을 연다. 알고보니 피아노였다.

우리 지금 엄청 분위기 좋은데 이 분이 부드러운 음악까지 선사해주셨다.

 

 

 

 

 

 

 

 

 

 

밖으로 나오니 우리 전부다 소리를 질렀다.

마침 해가지고 있는데 석양이 정말 아름다웠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카메라를 들었고 의도치 않게 포토타임이 진행되었다.

다니엘은 능숙한 솜씨를 모두의 전신샷을 촬영해주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슈퍼에 잠깐 들러 누님들이 한국으로 가지고 갈 데낄라를 구입하고

오늘 밤 우리가 먹을 맥주로 대량 구입을 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어제 호아끼나에 머물다 오늘 여기로 옮긴 뉴페이스 2분이 나타났고

우리는 오늘 밤도 역시 801호로 모였다.

 

사진의 순서대로

다니엘-박수오빠-경희누님-진이누님-이선누님-경서오빠-류씨언니-나-뉴페이스1-뉴페이스2

뜨거운 수다의 밤을 보낸 즐거웠던 멤버들이다.

 

알고보니 바텐더를 했었다는 뉴페이스2 분은 트리니다드에서 잠깐 마주쳤던 분이었다.

그 때 다른 일행들과 함께 있는 걸 봐서 친구들과 같이 온 줄 알았는데

호아끼아에서 만난 인연들이라고 했다.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정말 신기했다.

 

저녁때 먹은 랍스터와 칩들을 포장해왔었는데 이 걸 멋진 안주로 바꾸워 주셨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인데, 이렇게 기분 좋을 때 술이 빠질 수가 없다.

계속해서 먹다 보니 술이 부족해졌고 결국 누님들이 한국에 가지고 가려고 했던 데낄라도 오픈을 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각자의 생각이 있다. 모두가 서로의 상황을 들어주고 공감했다.

너무 너무 즐거웠던 밤이다. 이런 시간이 될 수 있게 같은 날 모여준 모두가 고맙다.

 

마지막 기념촬영은 브이를 비롯하여

지긋지긋한(?) 쿠바를 기념하며 1쿡 포즈를 취하고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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