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정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질수가 없는 자이살메르다.
여기로 오는 기차는 밤 11시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플랫폼에 들어 왔다.

죽은듯이 자다가 일어났는데 그건 정말 고역이었다.
사막지대로 갈수록 모래가 많아 지면서
달리는 기차안으로 상당한 양의 모래가 들어왔다.
이 모래를 마시면서 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자이살메르 기차역 앞에는
낙타사파리 투어를 하는 여행사들이 많이 나와있다.

1박을 밖에서 해야된다는 생각에 한국인이 많은
타이타닉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만난 사람은 우리에게
타이타닉보다 좋은 조건으로 투어를 해주겠다고 했다.
흔쾌히 예스를 외쳤지만 역시 도착해서 보면 아니었다.

결국 우린 타이타닉으로 향했다.


 



여기 주인인 폴루는 한국말을 할줄 아는것을 넘어서서
농담을 할줄 아는 수준에 다다랐다.
노래 부르는것을 아주 좋아했고..

가끔씩은 이렇게 불쑈도 보여준다고 했다.
지루하지 않은 밤이 지나갔다.

 

 

 

 

사막에 대비해 사둔 모자는 창모자였지만
폴루는 이런 모자로는 얼굴이 탈 수 있다고 창이 굉장히 큰 모자를 씌워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자가 아예 없었건만.. 나한테만.. 헤헤

 

 


그리고 지프를 타고 낙타가 있는 곳으로 이동.

어느 낙타를 탈지 모르는 상황에서
빨간 터번을 쓰고 있는 몰이꾼은 자신의 낙타에게로 오라고 했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사람과 외국인을 많이 만나봐서
약간의 한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알지만
내 낙타의 몰이꾼은 전혀 말을 할 줄 몰랐다.

내 모자가 날아가지않게 꼬옥 묶어주고
발걸이를 걸어주고 나서는 항상 'OK?'만을 물어보았다.


 


 

가자 빠뿌!

 

 



한참을 가서 드디어 점심시간.

쉬고 있는 나의 낙타의 이름은 빠뿌.
다른 낙타들의 이름이 비, 장동건 등인것에 비해
빠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카메라를 들자 딱 내쪽으로 쳐다봐주었다.
센스 최강!





점심은 묽은 커리 약간과 그자리에서 손수 만든 짜파티,
그리고 무슨 뿌리를 썰어 튀긴 것을 주었다.
눈치가 빠르면 숟가락을 얻을 수 있었고
접시만 쳐다보다가는 손으로 먹어야만 했다.


 


 



잠시 오아시스에 쉬다 갔다.
내 상상과는 다른 오아시스 였지만..
나의 빠뿌를 제외한 모든 낙타는 물을 마시고 출발했다.

우리는 3D입체 별을 보기를 원했지만
마침 저날은 오지않던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안타깝지만 별대신 구름에 가려진 달만 쳐다보았다.


 



밤이 되면 역시 캠프파이어다.
말은 거창하지만 저 안에 보면 우리가 사온 닭고기와 감자가 잔뜩 들어있다.
출발할때 같이 출발한 살아있던 닭들이 어느새 호일안에 들어있었다.

마음이 조금 짠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빠뿌는 다른 낙타들과는 달리 걸을때 실룩실룩
내리막을 내려올땐 퐁퐁 뛰어 갔다.

그덕에 목이 아파 감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약간의 몸살까지 얻게 되었다.

쉬기 위해 침대위에 누웠고
그 사이로 종종 별들이 보였다.
사막에서의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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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 역에는 정말 끝까지 따라다니는 사기꾼이 많은데
알면서도 당하는게 정말 이 곳인거 같다.

끝까지 뿌리치고 겨우 릭샤를 잡으면  다 사기꾼과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번의 실패후 잡은 릭샤꾼은 다행이도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우리가 원하는 호텔을 알고 있지 못했다.

결국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이 이상한 곳을 가르쳐줘서 엉뚱한 곳에서 하룻밤을 묶에 되었다.





침대칸이 아닌 기차는 처음이어서 모르는 아저씨와 함께 갔다.
우리가 묶은 숙소는 아마도 악덕 업체였을 것이다.
배낭을 맡아주는데 개당 50루피를 요구했다.

결국 다른 숙소에가서 배낭을 맡아줄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맡아 주겠다고 했다. 보관료는 무료.
너무 고마운 마음에 점심과 저녁은 호텔과 함께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다.


 


 



자이푸르는 핑크도시라고 불리우고 있었는데 사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던 도시이다.
하지만 저 문을 들어서는 순간 생각이 180도로 변하였다.


 


 

 

 



굉장히 큰 마을이 전부다 저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1층은 거의가 상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아직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자이뿌르의 또다른 도시의 모습이었다.

 

 


 

하와마할.
이게 보고싶어서 한참을 걸었는데 공사중이어서 정말 아쉬웠다.


 


 

인도에서 소는 교통체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오토릭샤를 타고 이동하는 중-

앞에 달리던 오토릭샤에 탄 어린이들이 너무 귀엽다.


 

 

 



자이푸르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영화이다.
라즈 만디르 극장에 가서 무슨 영화가 상영중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표를 끊어버렸다.

극장 시설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했다.
의자가 딱딱했지만 뒤로 몸을 젖히면 의자가 뒤로 눕기 때문에
의자의 가장자리에 머리를 기대고 편하게 봤다.

 

 

 

 

 

 

우리가 본 영화는 파트너라고, 네 남녀의 러브스토리인데 정말 재미있다.

각각의 캐릭터가 정말 잘 살았고 코믹스러움도 인도스러움도 기가막히게 잘 담아냈다.

특히 여자주인공은 꽤 유명한 연예인이지 나중에 산 잡지의 표지모델이기도 했다.

 

인도 사람들은 영화를 정말 즐겁게 보는것 같다.


웃긴 장면이 나오면 한껏 웃어주고
놀랄 장면이 나오면 소리지르면서 놀라고
좋은 장면이 나오면 박수까지 치면서 함께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되어 그들과 함께 느끼는 것 같다.

조금 새로웠던 건 한참을 재밌게 보고 있을 때, 화면이 정지되고 인터벌이란 글자가 뜬다.

중간에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자이푸르에는 그 유명한 라씨왈라가 있다.
셋집이 쪼롬히 붙어있는데 첫번째 집이 원조이다.

하지만 저 가게는 일찍 묻을 닫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두번째 집으로 향했다.


 


 



요구르트와 같은 라씨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바나나라씨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라씨의 시큼한 맛을 뒤로하고 바나나의 맛은 너무 맛있다.
처음으로 맛있다고 느낀 라씨였다.

 

나중에 들었는데 원조 라씨왈라에서는
플레인 라씨만 판다고 했다. 역시 원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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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 아그라성

from = asia =/* india 2008. 1. 17. 17:20

델리에 있는 붉은성을 보고 나면

아그라성이 별로 새롭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지만

우린 붉은 성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아그라성으로 향했다.


 



아그라 포트역으로 갈때만해도 저기가 어딘지 몰랐는데
그 굉장한 성벽은 아그라 성의 것이었다.

입구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붉은 아그라성의 모습은 가슴을 떨리게 했다.



 



성의 내부는 여러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구조도 꽤 복잡한듯 보였지만 사람들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가면 문제가 없었다.

 



 



자이뿌르로 가는 기차는 한참 뒤에나 오기 때문에 성에서 편안하게 쉬어 가기로 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역시 사람구경은 시간 가는줄을 모른다.

예쁘게 펀자비를 차려입은 여학생들은
단체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난 또 그속에 끼여서 증거를 남겼다.

아마 여기에서 현지인들과 사진을 가장 많이 찍지 않았나 싶다.

너도나도 다가와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것도 자신의 카메라가 아닌 나의 카메라로.





성 건너편에서는 멀리 타즈마할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성에서도 타즈마할과 같은 대리석으로 만든 건물도 즐비했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즈음 또 한 번 앉아 한참을 쉬어갔다.

 




너무나 귀여운 꼬마 아가씨들.
한쪽은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한쪽은 시종일관 웃음으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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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 타지마할

from = asia =/* india 2008. 1. 17. 17:15

우린 타지마할에 가기 위한 계획을 짰다.
타지마할은 마음내킬때 갔다오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생각한 내용은 달랐다.

어떻게 하면 피부를 덜 태울수 있을까??

먼저 갔다온 사람을 만났는데 한시간 있었을 뿐인데 살이 새카맣게 타있었던것이다.
안그래도 카주라호에서 너무 많이 태워서 걱정이었는데
여기에서도 태운다면 한국가면 무리수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결정은 아침 일찍 타지마할에 들어가서
대충보고 해가 뜬 다음의 타지마할을 구경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다음날 일찍 출발했다.


 


 


 



밖에서는 철저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던 이곳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 아침이라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던 관계로 좋은 자리에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잠시 후 드디어 햇빛이 들어서고 타지마할은 은빛으로 변했다.

그늘진 곳에서 아름다운 대리석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덥고 답답하고 이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예쁘게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현지인을 보는 구경 또한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면 한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이렇게 아름답고 거대한 건축물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햇빛이 들어오고 난 뒤로 부터는 이곳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늘아래 쉬고있는 사람들과 우리는 기념촬영을 계속 해댔다.
꼬마아이들은 자기를 찍어주길 원했는데 어른들은 우리와 함께 찍기를 원했다.

내가 찍어온 아이들을 하나하나 기억한다면
우리를 찍어간 그 사람들도 사진을 보면서 나를 기억하겠지?

 




나갈까 하던 찰나에 만난 사람은 전날 카주라호에서 만난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곤 좋은 장소를 소개해주겠다고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아 이런곳이 있었구나!
깜깜한 어둠속에서 보이는 새하얀 타지마할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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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까지 오는길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분명히 어제 터미널에서는 7시 출발이라고 하였는데
미리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 들은 이야기는 7시 30분이라는 것이다.
아침의 30분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말이지.

아그라의 버스는 인도여행을 하는동안 탔던 버스중에 가장 열악한 환경이었다.
철조물을 갖다 붙여 만든듯한 버스는 어쩐일인지 잘만 굴러다녔다.
단, 포장 도로에서도 철조각들의 흔들거리는 소리는 절대로 그치지 않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즈음
우리 버스에는 기사부터 안내원, 손님, 심지어는 짐조차도 남아 있질 않았다.

그와중에 옆의 출발하기 직전의 기사는 우리에게 다가와 아그라에 가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했더니 버스를 체인지 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버스가 바뀌었다고 생각을 하고

우린 무거운 배낭을 들고 좁디좁은 버스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출발한지 20분정도가 되었을때 안내원은 돈을 내라고 했다.
분명 잔시에서 아그라까지의 요금을 지불했는데..
이미 냈다고 하니 그건 조금전의 버스이고 이 버스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버스를 갈아타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갈아타라고는 말을 했지만 선택은 너희가 하는 것이다.
정말 큰것을 깨달았고 일단 탄 구간만큼의 금액은 지불하고
뒤에 따라오고 있는 우리의 버스로 다시 갈아탔다.

 




아그라 포트역에서 만난 스님은 감기가 걸렸는데 약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건강하고 건강한 나는 과감히 내 약의 3분의 2를 떼드렸다.
약을 준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었지만 나중에 감기에 걸리고 나서는 이 약이 아쉬워졌었다.

난 여행을 다닐땐 절대로 한국음식은 먹지 않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뜻대로 안되는 곳이 바로 인도인 것 같다.
아그라 역시 카주라호 처럼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굉장히 많았다.

인도 음식이 다양하지 않은 관계로 한참을 질려했던 우리는
가장 유명하다는 가게로 들어가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살기위해 먹으려고 했던 오므라이스는 의외로 맛있어서 고생했던 아침을 싹 잊게해주었다.


 


 


 

 

 



나와 함께 다닌 언니는 사진찍는 것을 좋아했는데
작품을 보면 이런사람 저런사람 죄다 사람만이 찍혀있었다.
자연도 관광지도 좋지만 사람에게서 풍기는 매력은 분명 그것들과는 달랐다.

저녁이 되어 무얼할까 생각한차에 뒤에있는 시장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거대한 시장은 갖가지 풍경을 다 만날수 있었다.

 

 

 

 

 


그리고 항상 카메라를 보면 쫓아오는 아이들.

꾸임없는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카메라를 보고 졸졸 따라오면서
찍어주겠다고 하면 딴청부리는 새침떼기 꼬마.


 



옆의 약국엔 사진찍지 말라고 호통치는 아저씨가 있었고
여기 약국엔 우릴 즐겁게 바라봐주는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가 묶은 라즈 호텔의 주인 아저씨.
한국인들이 쓴 방명록을 보여주며 자랑거리라고 으쓱대셨는데
정작 방명록에는 '잠만 자고 버스는 예약하지 마세요'
'아저씨 돈 관계에서 사기를 잘 치니깐 조심하세요'라는 의외의 문구가 가득했다.

차마 아저씨에게는 알려줄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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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사원을 빠져나왔다.


 



한국인을 많이 만나본 카주라호의 사람들은 다들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특히나 우리 일행은 여자뿐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꼬마들 까지도 말을 걸고 지나갔다.
지긋지긋한 현지인들의 한국말에 기분도 상하고 열도 꽤 받았을 즈음
우리에게 다가온 아이들은 의외로 우리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인도사람들은
카메라만 보면 다가와서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에게 다가온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 였는데 순수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하지만 이 순수한 아이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또 다르게 변할까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인도의 모습도 대부분 관광객이 만들었을 것인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두려웠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이들은 마냥 즐거웠나 보다.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싶다고, 시바를 본적이 있냐고,
본적이 없으면 우리집에 있는데 보여주겠다고.

미안한 마음이 잔뜩 들었지만 그 마음만은 받아들였다.


 


 



카주라호에서는 적어도 2박 3일은 있자고 생각했었는데
관광객에 그것도 한국인에게 찌들여 버린 카주라호 모습에
우리는 일찍 뒤돌아 서게 되버렸다.

인도의 버스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안좋았다.
저런 버스를 타고 10시간씩 다닌걸 보니 우린 참 대단했다.

아침일찍 버스를 타기위해 나섰는데 버스는 오질 않았고 오후 버스를 타야만 했다.
덕분에 미리 끊어둔 기차표는 환불을 했고 아그라로 가는 버스조차 놓치고 말았다.

 

 


 

 

 

 

 

버스터미널 근처에는 항상 사람이 붐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버스표를 검사하는 아저씨.

 

 



잔시로 가는 버스 안.
물을 파는 꼬마들 역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라댔다.
자신들이 찍혀있는 사진을 보고 나면
이 아이들은 물을 파는게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 누구도 자고 가지 않을 잔시에서의 하룻밤.
잔시는 관광객이 없는 탓에 호텔에 흔하지 않았고 호텔은 하루에 600루피 정도를 요구했다.

그 와중에 만난 한 아저씨는 끈질기게 우리에게 따라 붙었다.
언뜻보면 사기꾼처럼 보였는데 도와주겠다고, 필요한게 머냐고, 또 원한다면 저렴한 호텔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한시간이 넘도록 그 사람과 티격태격 댔었고 그 사람은 300루피짜리 호텔을 알려주겠다고 하고
우린 결국 따라가게 되었다.

아저씨는 오토릭샤꾼이었는데 운전중에 보여준 종이에는
아저씨를 거쳐간 수많은 한국인들의 칭찬 메세지가 담겨있었고
난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이윽고 도착한 호텔에서는 방값이 500루피라고 했다.
속았다라는 기분이 들 찰나에 바라본 아저씨는 주인에게 가서 조용하게
'한국아가씨들에게는 방을 300루피로 해줘라'라고 말을 하곤 떠났다.

우린 정말로 300루피에 묶었다.

여기 호텔은 어린 애들 두명과 젊은 애들 두명정도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언뜻보면 어설퍼 보였지만 마음은 정말 착한 아이들이었다.
바보같으면서도 순진한 아이들.

우린 다음날 새벽에 아그라에 가기위한 버스를 타러 갈때도
여기 호텔의 오토릭샤를 타고 갔다.
굉장히 먼 거리를 굉장히 싼 값에 태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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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무더운 날씨.

선풍기조차 고장나버린 우리 기차칸은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 더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것은 밤이였다는것.

인도의 기차는 연착은 당연한 것으로 봐도 괜찮다.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연착은 몇분 몇십분 정도 였지만 이곳은 달랐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무려 2시간을 그자리에 서 있었으며
어디서 내릴지를 몰라 잠도 깊게 들지 못하였고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가 있는 사트나에는 예정시간보다 4시 30분이 넘은 때에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를 놓칠것 같아 허겁지겁 달려간 터미널에서는

다행이도 아직 버스가 출발하지 않았고 우린 무사히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카주라호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식당으로 나섰다.

카주라호에는 한국식당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곳 식당들은 모두다 현지인이 한국인 여행객 또는 임의로 배운 음식 실력을 발휘하는 곳이었다.
배가 굉장히 고팠는데 내가 겁도 없이 주문한 라볶이는 무려 커리에 라면을 볶아서 내어왔다..

식사 후 맞은편에 있는 서부사원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율 때문이었는지 매표소에서는 달러는 받지 않았다.

서부사원군은 굉장한 모습이었다.
사원 안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되는데 거의 모든 사원은 비슷하게 생겼었다.


 



저걸 찍는데 단체 관광객이 잔뜩 들어와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찍게 된것.

 



 


 

 

 



카주라호는 섹스의 도시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여기 사원이 이런 모습으로 이루어 져서 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모습의 사원을 감상하던 사람들은 처음엔 건물을 보지만

시간이 지난후엔 다들 숨은그림찾기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이는 모습은 맑았지만 저쪽하늘에서는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가까운 사원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었는데 비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결국은 신발을 들고 사원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들어간 사원에는 우리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조용히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후 하나둘 얘기를 시작하더니 다들 노래를 함께 불렀다.

물론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보고만 있었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다들 웃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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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일이란건
관광지를 봤을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때 등등의 많은 일들이 이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즐거운건 사람과의 만남이 아닐까 싶다.

 

 



가트의 이곳 저곳을 다닐때 만난 아이.
인도에서 한달동안 만난 사람중에 가장 잘생긴 외모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와는 저쪽 밑에 가트까지 같이 갔었다.
헤어질땐 함께 사진도 찍었다.

 

 



다사스와메드 가트에서 만난 친구다.
가트에서 놀고 있을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와서는
예전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고 나랑도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짧은 영어실력에 할수 있는 말도 별로 없었지만
이 친구는 상당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한테 이것저것 얘기를 하기도 했다.
바라나시에 있었던 4일간의 시간 동안 이 친구는 매일마다 우연히 마주쳤고

하루에 두번 이상 만난적도 있었다.

나와 저 사진을 찍고 나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길래
종이에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더니 아주 당연하게 집주소를 적어주었다..

여담이지만, 매일 가트에서 놀고 있길래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는데 결혼은 했고 딸이 한명 있으며
직업은 손금을 봐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오토릭샤를 타고 사원들을 다녀 오는길에 만난 주유소 직원.
기름을 넣는 동안 이친구 사진을 여러장 찍었는데
자기가 알아서 여러가지 포즈를 취해 주었다. 본건 많았던듯 싶다.

 

 



한국인이라면 다 가봤을만한 가게인
미키네의 주인 미키와 헬핑보이.

저런 가게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바지를 사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참에 맘에 드는 바지가 있어서 들르게 된 곳이다.
그땐 그저 바지를 사기 위해 들어갔었는데 알고보니 한국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명한 집이었다.

미키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은 아이 였는데
이곳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서는
왠만한 대화는 가능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었다.

미키네에 들르면 항상 짜이를 대접해 주는데
이런 미키가 너무 좋아서 거의 매일 미키네를 방문해서
농담도 주고 받고 손님도 소개해주고 많은 일이 있었다.

두달 후면 한국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했었는데 다녀 갔을까.....?




 



인도에 와서 2일동안 인도음식을 먹지 못했었다.
여기저기 물어본 결과 탈리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어디가 레스토랑인지도 모르겠고..
식당으로 보이는 곳은 다 들어가서 탈리를 외쳐댔다.
사람들이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가라고 알려줘서 도착한 곳은 탈리를 파는 곳이라고 했다.

저 인상 좋아보이는 아저씨는 허허허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의심많은 우리는 들어가기 전에 가격먼저 물어봤다. 가격은 피프티, 50루피라고 한다.

전 날 먹었던 탈리가 100루피였던지라 굉장히 저렴하다고 생각했고 안으로 들어갔다.


접시 한가득 밥과 짜파티, 그리고 탈리를 올려주었다.
나올 때 150루피를 주니, 하하 웃으며 피프티가 아니라 피프틴이라고 한다.
저 밥값이 무려 1인당 15루피였던 것이다.

너무 맛있고 인심이 좋은 그곳을
바라나시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들렸다 갔다.


 



미키네로 가는 골목은 수많은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다.
여러가지 악세사리들을 팔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난 인도에 온 기념으로 
빈디(이마에 붙이는 점)를 사기로 했다.

빈디의 종류를 헤아릴수 없을 만큼 다양했으며
난 기본적인 까만점부터 시작하여 반짝이는것, 주렁주렁 달린것 등 재미있는것을 많이 샀다.

그리곤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빈디가게 주인과 계속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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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생각했던 만큼 한국인이 많이 있었다.
한국인이 많은 여행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좋은 점은 있었다.

우리가 묶는 숙소는 무려 4층이었다.
하루에 450루피를 지불했는데, 강이 훤히 보였기 때문에 비싼가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몇몇 한국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평균 200루피를 주고 머물고 있었는데
특히나 바라나시는 인도내에서도 싼 물가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이틀째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숙소를 옮겼다.
강이 보이는 250루피 방으로-





메인 가트인 다사스와메드 가트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라는 인구가 많을수록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세계를 움직였던 여러나들을 보면 항상 인구가 많은 나라가 주도하고 있었다고.

인도도 마찬가지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중 하나이다.
하지만.. 인구에 비해 일을 하고 있는 비율이 너무 낮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해준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일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가트 주변에는 관광객을 맞느라 분주한 사람들이 많다.
보트를 움직이는 사람, 이마에 점을 찍어주는 사람, 그리고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잠시 앉아서 쉬는 동안 마사지를 받는 한 외국인을 보았다.
한참동안 저렇게 누워서 받던데 아, 나도 남자였으면 해보는 건데 아쉬웠다.

 


 

 



갠지스강에 있는 수많은 가트들은 다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심심하다, 지루하다 싶으면 여기저기 가트 주변을 어슬렁 거리기도 했다.
가트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서 생각보다 덜 지루하다.

이 곳 역시 근처로 가면 보트를 가진 사람들이 어김없이 나타나곤 한다.

우리가 인도에 갔을때는 애석하게도 장마철이었다.
장마가 아니었으면 갠지스강을 찾는 많은 사람을 만날수 있었겠지만
이때는 소수의 사람많이 찾고 있었다.

갠지스강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사람은 바로 신성한 강가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이다.
목욕도 어찌나 깨끗하게 하는지 비누거품을 내어 몸 이곳 저곳을 빡빡 문질러댔다.
그리곤 강물로 몸을 헹궈냈다.

그리고 강물에서 수영하고 노는 아이들도 자주 볼 수 있고
반신욕을 하고 있는 소도 만날수가 있다.

 

 


 


 


 

 


다사스와메드 가트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가다보면 화장터에 다다르게 된다.


난 바라나시에 있을동안 화장터에는 3번을 가봤다.
첫째날에는 시신을 태우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둘째날에는 불속에서 유유히 타다가 뚝 떨어지는 발도 보게 되었다.
셋째날에는 겁도 없이 쳐다보고 돌아다니다 돌아왔다.

여기 화장터를 보다보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던데
그것보단 시신을 찾으려는 숨은그림찾기 정도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보트를 타려면 타기전에 적당한 협상이 필요하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싼 가격에 탈 수 있다.
우린 보트가 많은 곳에서 탈만한 사람을 기다렸다가 함께 올랐다.

보트를 타면 가트의 모습을 저 멀리서도 지켜볼 수 있기때문에 기분이 색달라진다.

 

 



낮에 탄 보트에서 노를 젓는 이 분은 어릴적부터 노를 저었다고 한다.
자신의 손을 보여주는데 굳은살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물살을 따라 내려갈때는 방향만 조절하면 되서 편한데
대신 돌아올때는 힘이 많이 든다고.


 



밤에 가트 주변에 가면 꽃속에 양초를 넣어 파는 여자들이 굉장히 많다.
여기에 불을 붙여 강에 띄우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했다.
이것은 단돈 5루피. 우리는 이것을 사서 다시한번 보트에 올랐다.

밤에 보이는 가트의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뿌자 의식은 굉장한 빛을 발하게 되는데 이것을 멀리서 보는것은 굉장히 두근대는 일이다.
강 한 가운데에 도착했을때 우리는 양초에다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었다.

바람이 상당히 강했는데

내 옆에 앉은 인도인은 내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손수 바람을 가려주었다.
덕분에 내 소원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은것 같다.
그리고는 갠지스강 한 가운데에 우리의 소원을 띄웠다.

 

 

 

 

 

 

 

 

저녁에 가트로 나와보면 몇몇의 사제들이 의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의식을 아르띠 뿌자라고 한단다.


처음엔 노래로 시작해서 함께 박수도 쳤고
뒤에는 종을 울리고 여러가지 물건들을 돌리면서 의식을 진행해갔다.

무슨 내용인지는 당연히, 아직도 모르겠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의식인건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흔들린 사진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옅게나마 그 때의 분위기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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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from = asia =/* india 2008. 1. 15. 16:35

드디어
바라나시로 출발.


 

 



 

 

 



인도는 유동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움직이는 기차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기차여행이란 것은 가장 가벼운 여행이면서도 가장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열악한 환경이라면 얼마든지 겪어보았던 나이기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슬리퍼칸을 나역시 선택했다.

누워서 갈 수 있는 기차는 처음이었기에 푹신한 쿠션이 없어도, 자리가 넓지 않아도, 깨끗하지 않아도..
선풍기에 끼여있는 먼지만 바라봐도 '아, 이것이 인도의 기차구나-'
기차여행의 즐거움을 잔뜩 만끽할 수 있었다.


 



세계의 모든 역이 그렇듯 역 주변에는 갖가지 사람을 다 만날수가 있다.
이 곳 역시 그랬다.

역 앞에 있던 싸이클 릭샤왈라와 가격 조정 끝에
20루피에 중심지인 다사스와메드 가트까지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금액이지만..

다사스와메드 가트는 생각보다 굉장히 먼 곳에 있었다.
좁디 좁은 싸이클릭샤에 여자두명이, 것도 10키로가 넘는 배낭까지 들고 탔으니
저 릭샤왈라는 아마도 저날 몸살이 나지 않았을까.


 


 

 

 

 

 

 

 



고돌리아를 중심으로 바라나시의 거리는 사람들로 상당히 붐볐다.

델리에서 운좋게 무료로 잤던 호텔의 숙소는 700루피에 가까웠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인도의 물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400루피라는 큰 돈을 주고 숙소를 정했다.

이 후 바라나시 구경에 나섰다.
알아볼수 없는 글자들은 나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놓은 듯 하였고
소와 함께 걷는 것과 수많은 경적음 소리는 내 머리를 한껏 아프게 했다.

 



 



시골 인심이 좋은 이유는
질 좋은 물건을 싸고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과일들이 많았지만 시퍼런 망고를 선택했다.
분명히 망고의 색깔은 초록색인데 할아버지는 매우 달다라는 말을 수차례 우리에게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먹은 파란 망고의 맛은 지금껏 먹은 과일중에 가장 단 맛이 아닐까 싶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인도 사람들의 특징이 드러나는 아이템 뱅글,

이 후에 한국에서도 엄청 유행했었다.

여기저기에서 반짝거림이 나타난다.

 

 

 


 

 

 

 

바라나시는 꼬불꼬불한 골목으로 미로도시처럼 생겼는데

골목으로 들어가면 분주함과 정적인 모습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인도에서 "소"란 숭배의 대상이기 보다는 저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존재이다.

 

 


 

 

 

숙소에 누워있으면 별의 별 상화을 다 겪게 된다.

창문에는 원숭이가 붙어있고, 도마뱀도 자주 출몰한다.

바라나시 뿐만아니라 인도 전 지역에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인도로 가기 전에 듣는 많은 충고 중의 하나는 항상 음식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물론 인도에 도착하고 나서도 들은 이야기이지만
한가지 인도음식에 있어 안심할 수 있는것은 이들은 절대로 익히지 않는 음식은 안먹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건 여긴 상당히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사람들은 튀긴 음식을 많이 먹는 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 음식을 튀기는 것을 보면 내가 튀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위가 느껴졌다.

 

 

 

 

그리고 인상적인 모습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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