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부터 뭔가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다.

오늘 밤에 박수오빠와 류씨언니는 바라데로로 뒤늦은 신혼여행을 떠나고

나는 까마구에이라는 미지의(나에게) 도시로 쿠바에서의 첫 혼자 여행을 떠난다.

아바나에서 다시 만날거지만, 셋이서 한방을 쓰는 이 만행(?)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은 산티아고에서 그 동안 가지 못했던 곳들을 다닐 생각이다.

역시나 뜨거운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계획없이 나갔다간 체력만 방전되기 때문에 살짝 루트를 정리해본다.

박수오빠와 류씨언니는 오늘 저녁 떠날 짐 채비도 해야하기 때문에 아침 일정은 패스이다.

모자와 선크림으로 단단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 내가 가는 곳은 비밀투쟁박물관이다. (Museo la Clandestinidad)

티볼리 마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 전에 왔던 길을 따라가는 중이다.

 

Balcon de Velazquez를 지나가는 중.산티아고의 내리막과 오르막은 정말 매력적이다.

 

 

 

쿠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강아지들의 자세.

항상 창 틀 사이로 몸을 꼬깃꼬깃 집어 넣고 밖을 쳐다보고 있다.

 

 

 

 

 

 

 

 

 

 

예쁜 계단길이 있던 파드레 삐꼬(Padre Pico).

전에 왔을 때는 예쁜 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어서 볼만 했었는데

오늘은 차들 대신에 행인들이 거리를 빛내주고 있다.

이 길이 저 끝까지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다.

 

잠깐 해가 구름에 가려져 어둑해졌을 때 잠깐 한 쪽 벽면에 기대 서 있었는데

저 멀리서부터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여자분 한분이 다가온다.

나도 동양인의 모습이라 반갑게 웃으며 고개를 약간 숙이며 인사했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반가워하는 이분.. 정말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신다.

 

- "니혼진데스까?"

- "이이에- 칸코쿠진데쓰..^^"

- "아... 부엔 비아헤!"

- "네 부엔 비아헤!"

 

일본 사람을 기다렸나보다. 정말 아쉬워하곤 그 자리를 떠났다.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동향의 사람을 만난다는게 얼마나 반가운건지 모른다.

처음 마주하는 사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툭 터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하고.

 

 

 

 

 

 

비밀투쟁 박물관은 2쿡. 당연히 촬영 비용은 별도다.

하지만 발코니/외부 촬영은 무료로 가능하다.

 

가볍게 설명을 해보자면-

이 곳은 예전에 혁명 이전에 경찰서로 이용되었던 건물이다.

멕시코로 망명해있던 피델 카스트로 형제와 그의 혁명군들이 다시 쿠바 땅을 밟기 위해서

산티아고에 있던 "프랑크 빠이스"와 협동작전을 실시하였고,

이 들이 쿠바로 들어오는 날 프랑크 빠이스는 이 경찰서를 습격하여 시선을 돌렸다.

이 후 혁명군은 쿠바땅을 밟게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작전은 실패하여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으로 피신을 하게된다.

프랑크 파이스는 이 후에도 계속 혁명군을 도와 행동하지만,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이 곳은 단순히 당시에 습격했다는 사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쿠바혁명을 승리로 이끌어내긴 위한 하나의 큰 발판이었다는 것이 매우 의미있다.

비록 당시 혁명군들의 작전은 실패하였지만, 이 습격으로 인하여 쿠바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이 후 재정비하여 정부군에 승리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비밀투쟁박물관에서는 산티아고 출신의 영웅인 프랑코파이스와 그의 동생,

그리고 함께 변화를 지지했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쿠바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적극 추천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가볍게 지나쳐도 좋을 것 같다. (영어X)

 

 

 

 

비밀투쟁박물관 맞은 편에 위치한 피델 카스트로가 학창시절에 살던 집이다.

생각보다 초라한 건물들만 있어서 옆에 앉아있던 주민들에게 여쭤보니 여기라고 알려주셨다.

 

사진을 찍는 동안 뒤에서 들리는 낄낄낄 웃음 소리-

워낙 동양인을 신기하게 보는 쿠바이기 때문에 날 보고 웃나 싶어 뒤로 돌아봤더니

여학생들이 3명이 앉아서 날 보며 웃고 있다.

 

뭐가 웃기냐는 듯이 표정을 지었더니 한 여자애를 가리키며 "널 닮은 애가 있다"라고 한다.

정말 한 학생이 반쯤 동양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혼혈인 것 같다.

그런데 얼굴이 너무 예쁘다. 한국에서 보면 서양적이다라고 말할 얼굴?

말을 걸어보려고 했는데 그 학생은 그게 너무 싫었는지 약간 숨고 싶어하는 반응이다.

아쉽지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떴는데 한번 말을 걸어볼 걸 그랬나보다.

 

 

 

 

돌아가는 길에 본 쿠바의 학생들.

표정이 너무 밝은 것이 쿠바의 미래도 밝을 것 같다.

 

사실 쿠바는 관광지나 아름다운 자연 풍경보다는 사람의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

그 모습들을 담지 못한게 아쉽지만... (난 왠지 사람사진은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까 신나게 내리막을 내려왔으니 이제 오르막으로 올라가야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모퉁이를 건너려던 찰나 보이지 않던 곳에서 갑자기 오토바이 한대가 나타나 부딪혔다.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보호하려고 렌즈를 잡다보니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이 까졌다.

나에게 소리를 치는 오토바이 운전사. 똑바로 보고다니란다.

열 받아서 나도 너나 똑바로 운전하라고 소리지르니 소심한것, 금방 깨갱한다.

너무 미안하단다. 그럴거면 왜 나한테 소리친거야~ 기선제압인건가?

사실 이미 한번 다친 손가락이었는데 다 낫기도 전에 충격을 받으니 아직까지도 너무 아프다.

 

 

 

 

집으로 가서 박수오빠와 류씨언니와 다시 조우했다.

점심을 먹으러 Fondita 460으로 가서 돼지고기 볶음밥을 우선 먹었다.

휴무였던 일요일을 제외하고 3일간을 여기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어느새 주인할아버지와 여직원과도 친해졌다.

오늘 밤 떠난다고 했다. 남미는 항상 좋은게 헤어질 때 꼭 행운과 조심을 빌어준다.

 

그리고 우리가 바퀴벌레처럼 붙어있던 아이스크림 집으로 향했다.

딸기맛도 맜있었는데 이 날은 Mantecado(우유&버터) 맛이다. 아줌마는 오늘이 더 맛있을거라고 한다.

정말 맛있다. 몇개를 먹냐가 관건인데, 난 이 날도 2개를 해치웠다.

박수오빠는 무려 4개ㅋㅋ

 

 

 

 

 

 

오후 일정인 몬까다 병영으로 가는 길.

어디로 갈 때는 항상 모르는 길로 가라-는 우리의 방침대로 어거지로 일단 발을 옮겼다.

그런데 계속 오르막이다. 찌는 듯한 더위가 우리를 괴롭히지만 지지 않을 것이다.

 

한 판자집을 지나는데 강아지가 보여서 찍은 건데 상황은 우리와 비슷하다.

어서 그늘로 들어가거라.

 

 

 

 

 

 

 

 

 

 

엄청난 오르막을 다 올라오고 나서 잠깐 쉬는 시간이다.

뒤을 돌아보니 가관이다. 이걸 우리가 올라온 거다.

잠깐이지만 셔터를 돌리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몬까다병영 직전에 있던 아벨산타마리아 공원이다.

쿠바의 국기가 날리고 있었다.

 

한 편에는 호세마르티와 아벨 산타마리아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 아래에

분수는 아니고.. 아무튼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물이 기념비를 받히고 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에서 보니 조금 당황스럽다.

역시 쿠바는 뭔가 하나가 부족해보여야 멋있는 법이다.

 

몬까다 병영을 눈 앞에 뒀는데 여기에 오면 떡하니 보일 줄 알았던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엄청난 크기여서 입구가 도통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다.

박수오빠의 촉이 가는 대로 향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저쪽인 것 같았었다...하하)

아무리가도 나오지 않는 몬까다 병영. 주변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왔던 길을 되돌아 가란다.

알고보니 우리가 왔던 곳에서 조금만 더 직진을 하면 바로 입구였다. (나의 촉이 가던 곳)

 

 

 

 

이미 지친 우리. 잠깐 건물을 바라보며 쉴 겸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야매(?) 강사는 나다. 헤헤

 

일단 체 게바라 위주에서 먼저 이야기를 해보자면

아르헨티나의 부유층에서 자란 체 게바라는 의대를 다니던 중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오토바이 페데로사를 타고 중남미 여행을 하게 된다.

이 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다.

여행을 끝내고 아르헨티나에 돌아온 후에도 게바라는 가슴속에 그 때의 현장을 담고 있었고,

결국 보장되어있던 미래를 버리고 인류를 위해 힘쓰겠노라, 중미로 오게 된다.

과테말라에서 페루 출신의 일다를 만나고 그녀의 소개로 피델 카스트로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일다는 체 게바라의 첫번째 부인이기도 하다)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일 라울카스트로와 함께 바티스타 정권에 맞서 혁명운동을 한 인물이다.

정부군에 맞선 최초의 시도라고 불리는 이 곳에서 습격을 시도하였지만 실패로 끝나게 된다.

여기서 체포된 혁명군들은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카스트로 형제는 추후 재판을 받게 된다.

본인 변호를 하게 된 카스트로는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말을 남겼고,

카스트로를 지지하던 시민들로 인하여 두 형제는 멕시코로 망명하게 된다.

 

이 후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의 뜻을 알게 되고 함께 쿠바의 혁명을 추진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프랑크 파이스와 연락하며 혁명의 시기를 보고 있었고,

마침내 그의 도움으로 혁명군은 그란마호를 타고서 바다를 가로질러 쿠바 땅을 밟게 된다.

하지만 이 날의 습격은 정보가 새어나가며 실패로 끝났으며 단 12명만 살아남아 마에스트라 산맥으로 숨게된다.

살아남기에도 힘들었던 혁명군은 산 속에서 재정비를 하게 되고,

바티스타 정권아래 힘들었던 사람들이 이들의 존재를 알고 하나 둘 혁명군으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다시 혁명에 대한 불씨를 살려내게 되었다. 독재자 바티스타는 이들의 존재가 눈엣가시였다.

 

혁명군들을 모조리 없애기 위한 엄청난 물자를 기차에 실어 보냈지만,

시엔푸에고스-체게바라로 나누어 지휘하던 두 부대가 산타클라라에서 이 기차를 습격함으로써

겁먹은 바티스타는 도미니카로 망명을 하게 되고, 이윽고 혁명군의 승리를 이끌어 낸다.

 

 

 

 

정식 명칭은 7월 26일 박물관이다.

처음 몬카다병영을 습격한 날인 7/26일을 기념하기도 하고, 이 습격의 작전 이름도 7월 26일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박물관과 7월 26일 학교로 이용되고 있다.

몬카다병영 안으로 들어간다. 입장료는 2쿡.

 

혁명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첫 시도 부터 망명, 잠복기, 성공까지.

그 간의 고통들이 모두 담겨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의 역사를 가지고 계속 입에 담았다.

쿠바의 역사는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일들이고, 그 당시의 인물들이 아직까지 생존해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오늘 박물관들을 다니면서 그들의 염원, 피와 땀, 희망들을 보면서

흥미만 가지고 가볍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 졌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쿠바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가 지금 현재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바라보는 운동장의 모습이다.

파란 하늘아래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굉장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혁명을 위해 희생했던 그들이 원했던 이 것이 아닐까 하며 잠깐 감상에 젖어있었다.

 

그 순간 내 옆에 와서 계속 쳐다보던 꼬마아이.

사진찍어줄까? 했더니 금새 포즈를 취한다. 찍고 나서 보여주니 만족했다는 표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1쿡을 달라고 한다. 나 지금 엄청나게 센티했는데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계속 따라온다... 미안하다. 난 줄 수 없다.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며 꿰찼던 자유가 이런 아이러니한 모습을 낳아낼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것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과제가 아닐까 싶다.

 

건물 가운데에 붙어있는 26이라는 글자를 찍고 싶었는데

경비원이 수업중이라며 학생들이 없을 때 찍으라며 막아선다. 서운했지만 맞는 말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허락받지 않고 그들의 영역에 들어가는 건 잘 못된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바라본 곳에 외국인과 여학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헬로, 하우알유?"

- "아임 파인 땡큐, 앤유?"

놀라울 정도로 우리와 교육과정이 같다.

학생들의 대답을 들은 외국인은 하하하 웃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한 쪽에 있는 빵집 위의 온도계는 34로를 가리키고 있다.

쿠바은 온도가 문제가 아니다. 뜨거운 햇볕이 문제이다.

 

 

 

 

길 건너편에 있던 건물.

왠지 혁명과 관련된 중요한 기관처럼 느껴졌지만 도저히 다가갈 자신이 없다.

지금은 두발로 걷고 있는 내가 대견한 상태이다.

 

 

 

 

 

어제 밤에 경서오빠와 혜원이를 만났던 마르티 광장.

저녁에는 사람도 엄청 많고 북적이는 느낌이었는데 낮에보니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아침에 박수오빠가 사먹었다는 굴 가게에 들렀는데,

생굴을 접시에 담아주는 줄 알았더니 요런 잔에 소스를 넣고 지불한 만큼의 굴을 담아준다.

난 5MN를 냈더니 저 정도를 준다. 사실 비쥬얼이 배탈나기 딱 좋은 모양새다.

 

주문은 했는데 먹을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일단 주문한 것 그냥 먹어보기로 했다.

내가 천천히 먹는 동안 3~4명의 쿠바인들이 먹고간 것 같다. 저걸 음료수처럼 한입에 먹고 간다.

맛은 시큼하면서도 약간 쿰쿰한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다.

다행이 배탈은 없었다. (난 여행할 때 만큼은 참 건강한 편이다!)

 

가는 도중에 오렌지맛 슬러시도 시원하게 한잔!

 

 

 

 

너무 더워서 일단 마트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좀 쐬기로 했다.

들어온 김에 슬리퍼를 살까 싶어서 슬리퍼를 판매하고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서 어슬렁 거리던 찰나, 한쪽에 의자가 있는걸 발견했다.

 

의자에 앉아서 잠깐 쉬고 있을 때 우리 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류씨언니-박수오빠의 발.

 

나는 도착했을 때 나름 뽀얀 피부로,

장기간 여행했던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막 온 아이같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쿠바여행 3주만에 저렇게 현지인 피부로 변해있었다. 슬리퍼의 브이라인이 참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나저나 박수오빠와 류씨언니의 발은 그 동안의 고생을 보여주고 있다.

 

7월의 내가 아직도 저 피부인 걸 봐서는

언니 오빠의 피부는 아마 내년 겨울쯤에야 조금이나마 하애지지 않을까 싶다.

(내년 5월까지 여행할 계획이므로-)

 

 

 

 

아침에 봐두었던 슬리퍼 가게로 가서 Havaianas 슬리퍼 구입!

멀쩡한 슬리퍼를 두고 새로 구입한 이유는 이 브랜드가 쿠바에서는 매우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 전에 샀던 것도 12쿡을 줬는데, 지금 한국에서 보니 36,000원에 팔고있다.

이 날 구입한건 6.8쿡을 줬으니 약 8,000원 정도를 주고 슬리퍼를 하나 산거다.

디자인은 그냥 내 발에 맞는 디자인으로- ㅋㅋ

 

박수오빠와 류씨언니와 조금 이른 마지막 저녁식사를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나갈 채비를 하고 아저씨가 부른 택시를 타고 떠났다.

 

이제 나 혼자다.

혼자를 결심하고 온 쿠바에서 운 좋게 좋은 인연을 만나 지금까지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다시 여행을 처음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있을지 두근거린다.

 

 

 

 

내가 탈 까마구에이 행 버스는 밤 12시인데,

까사 아저씨가 손님도 없으니 그냥 그때까지 있다가 가라고 한다.

그것도 추가금액 없이! 아저씨 정이 안느껴져서 내내 별로였는데 처음으로 마음에 든다.

 

음악을 들을 겸 세스페데스 광장으로 갔는데 오늘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잠깐 벤치에 앉아서 글도 쓰며 나름 사색을 즐기고 있는데

옆에 할아버지 한명이 앉더니 자꾸 나를 부르는 소리를 낸다.

(츳츳 거리는 소리, 쿠바에서는 누군가를 부를 때 항상 이 소리를 낸다)

 

옆을 돌아보니 갑자기 입술을 내밀며 Chu~

웩 기분이 급 상했다. 다시 또 부르길래 봤더니 또 Chu~

정말 싫다. 내가 본게 다가 아니겠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입술을 잘 내민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어서 분위기 좀 타보려고 했더니 여기 앉아있기가 싫어졌다.

 

분주했던 번화가 거리를 밤 중에 걷는 동안 레게머리를 한 청년이 말을 건다.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대화가 오가고, 한국에도 Rasta가 있냐고 한다. 당연하지!

그리고 레게를 좋아하냐길래 특히 레게를 굉장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한 레게가수의 음악은 좋다고 했다.

길가에서 내가 스컬(Skull)에 대해 설명하며 붐디붐디를 부르며 빌보드 차트에도 올라갔다고 하며 모르냐고 하니

이 친구 당황한다. 내가 이리도 적극적으로 나올지 몰랐던 것 같다.

어쨌든 얘기가 길어질 것 같고, 이 친구랑은 별로 얘기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매일 가던 저녁식당 앞에서 한 남자애가 밥 먹고 가라고 한다.

내가 아까 여기서 저녁먹었다며 맛있었다고 하니깐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다.

다른 친구도 한명 있었는데 다시 또 기본적인 인사 얘기가 오갔다.

그 때 아까 우리가 식당에 들어갈 때 앉아있었던 아저씨가 나왔는데 아까 왔던 친구라며 날 반갑게 인사해줬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 꽃이 펼쳐졌다.

 

쿠바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가장 주된 것이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전처럼 폐쇄적인 분위기였다면 몰랐을 일들이지만 해외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들과

매체들로부터 접하게 되는 바깥세계에 대한 내용은 그들에게 신기함과 부러움을 함께 가져다준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힘들었던 그들을 혁명을 통해 구제해준 카스트로는 굉장히 존경하는데다,

굷어죽을 일도 없지만, 희망없이 살아가는 삶은 그 자체로만으로도 힘들다는 것이다.

대부분 여행을 하고 싶어했다. 큰 욕심도 없고 단지 다른 세계를 보고싶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아까 그 아저씨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친구를 가리키며

얘가 너보다 스페인어를 더 잘한다며 얘기하신다. 푸하하하

 

여기서 거의 한시간을 보낸 듯 하다. 이제 나도 떠날 준비를 해야한다.

아쉬운 이별을 하며 메일주소를 주고 받았는데, 그저께 보니 이 친구에게 메일이 와있었다.

답장이 늦어 미안하지만, 나도 얼른 보내줘야겠다.

 

산티아고는 내 계획에서 그저 들러야 할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다.

사실인게 Morro와 몬카다병영을 제외하고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직접 겪은 산티아고는 도시의 분주함, 엄청난 삐끼들, 국경없는 Amigo의 드립(?),

아무데서나 들려오는 즐거운 음악소리, 그리고 역사와 함께 쿠바인들이 살아가는 모습.

이 모든 것들이 담겨있었다고 본다.

 

여행의 즐거움을 이렇게 또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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