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남미여행 때 가지 못했던 리오를 이제야 들렀다.

 

리오는 나폴리, 시드니와 함꼐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곳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중 리오가 가장 이쁘다고 하더라.

사진만 봐서는 그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그저 예쁜 바다 같다는 생각들.

 

그리고 맞이한 리오의 전경-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찾아갔더니 해가 저기에 자리잡았다.

아우라는 좋지만 밝은 모습의 예수님을 뵙지 못했다.

내려가기 전까지 계속 저 모습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이틀전에, 리오에 돌풍이 불었는데

그때 예수님 손가락에 벼락이 떨어져 손가락이 부숴졌다고 한다.

너무 큰 모습에 손가락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리오의 전경을 깔끔하게 봤다.

저기 저 끝까지 보기가 정말 어렵다고 한다.

 

산들이 이루는 라인은 한국만 예쁜 줄 알았더니 리오의 라인도 너무 예쁘다.

혼자 우뚝 솟아있는 슈가로프산은 보기만해도 매력이 넘친다.

 

 

 

 

케이블카를 타고 우르까를 지나 슈가로프 산으로 가는 중-

뾰족한 돌산을 손바닥으로 만지고 싶다.

 

 

 

 

 

 

해가 질 무렵 가장 예쁜 리오를 만난다.

건물들에 하나 둘 씩 불이켜지고 점점 어둑해져간다.

 

 

 

 

한켠에 코파카바나 해변이 보인다.

이미 좋은 자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앉아있다.

어디 다른 좋은 곳이 엄나 두리번 거려보고.

 

 

 

 

시원한 맥주를 하나 손에 들고 다른쪽으로 이동했더니

내 앞의 의자에 앉은 사람이 자리를 비운다.

운 하나는 짱이라며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슬픈 생각 안좋은 생각들 여기선 잠깐 던져내고

숨고있는 해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무념무상에 빠져본다.

 

** 그리고 작지만 남아있는 리오의 기억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이빠네마 해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사람들이 나와있다.

선베드에 누워있는 사람도 있고, 배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년 삼바축제가 펼쳐지는 삼보드로모.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라 모두들 차에서 내리기 싫다하여 버스에서 내려다봤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은 피라미드 외형으로 유명하다.

밖에서 봤을 때는 특이한 콘크리트 건물 정도로만 생각이 되었는데

내부의 높은 천장을 보니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찾는데는 다 이유가 있던거다.

,

난 엄청난 여행 고수라던가 그런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여러 곳을 다녀보면서 어디가 좋더라 쯤은 말할 수 있다.

이과수폭포는 남미를 대표하는 볼거리 중 다섯손가락 안에는 드는 곳이다.

이 곳을 보고나서 봤던 폭포들은 모두 물줄기로 보일 밖에..

 

얼마전 봤던 영화 미션 속에서의 이과수도 활기찼다.

이과수폭포는 예전에도, 내가 처음 마주했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활기참을 잃지않고 힘을 내고 있다.

 

 

 

 

 

 

세계 3대폭포가 모두 국경에 위치하고 있듯이

이과수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에 위치하고 있다.

 

두 나라라를 가로지르는 이과수강을 연결하는 것은 우정의 다리다.

이 다리의 반은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하늘색과 흰색,

반은 브라질을 상징하는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리고.. 이과수 폭포를 감상한다.

 

 

 

 

 

 

 

 

 

 

 

 

 

 

 

 

아르헨티나 편 이과수에서는 기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악마의 숨통을 보기 위해서다.

 

 

 

 

악마의 숨통을 보기 위해 이과수 강을 건너는 중-

오랜 기다림 끝에야 이과수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사진은 아르헨티나에서 바라보는 악마의 숨통-

 

,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 생김새부터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

내가 생각했던 유럽계 백인의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예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참 인기없던 얼굴이었다고 생각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지나가는 남자들마다 다 인사를 건네주고

누구는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서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옛 생각을 하니 너무 재밌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다시 만난건 7~8년 만이다.

20대 초반...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 왔었는데..

이 곳이 내 인생을 변하게 만들었다.

 

이 나라 특유의 냄새와 길거리의 분위기가 향수를 자극했다.

매일 같이 찾아갔던 쇼핑몰과 슈퍼를 방문할때는

변함없는 모습에 눈물도 그렁그렁해지더라..

 

지겹도록 보던 모습들이라 크게 글을 남길건 없지만...

그래도 다시 찾은 이 곳을 다시 한번 얘기해본다.

 

 

 

 

맑은 날씨, 예쁜 모습의 대통령 궁이다.

5월의 광장은 항상 비둘기와 시위대로 인해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학원가는 길이라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었고.

 

지금도 비둘기와 시위대는 여전하다.

지인의 말씀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의 앞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라는 한때 대국으로 불리던 이 나라를 뒤돌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화려했던 나라가 노력없이 방심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라고.

나도 왠지 모르게 뜨금한 마음이 든다.

 

어쨋든 지금 최악의 상황이라는 아르헨티나.

현재의 고통이 다시 예전 모습을 찾고 더욱더 부상하게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성당을 둘러보다 발견한 이 곳은

아르헨티나와 페루 독립의 영웅 산마르틴 장군의 묘이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대성당을 왔으면서 이 곳이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

분명 그 때는 관심이 없었으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거다.

 

 

 

 

 

 

 

 

주말에 찾은 보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평일에 찾기에는 흥이 덜 나서 상심하게 되고.

아무튼 보카는 여전히 화려하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3명의 인물이 손을 흔들며 반기고 있다.

 

마라도나 - 신의 손 논란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르헨티나 축구의 상징이다.

에비타 - 페론 대통령의 영부인인 에바 페론의 애칭으로, 그녀는 민중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까를로스 가르델 - 탱고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대중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리고 자유시간 동안에 Havanna 카페에 들러 잠시 탱고음악을 들으며 쉬어본다.

 

 

 

 

에비타(에바페론)의 묘지 앞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여기가.. 티그레라고?

너무도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에 놀라버렸다.

예전에는 벼룩시장처럼 천막과 부스들이 늘어저 있었는데.

시장을 돌아다니며 과일도 사고 모자도 사고 꿀도 샀다.

 

 

 

 

 

 

유람선을 타며 휴양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부족한 딱 한가지는 파란 해변이다.

라플라타 강은 바다처럼 넓으면서 흙색만 보이고 있다. (더럽지는 않다)

잔디밭에 앉아 쉬고, 보트도 타고, 수영도 한다.

 

 

 

 

유람선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옛 사르미엔토 대통령의 집.

 

 

 

 

오랜만에 정통 아사도 가게를 찾아가서 고기를 주문했는데

두툼한 고기의 두께에 흡족해했지만, 고기보다 지방부분이 많음에 금새 실망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의 칼질 솜씨는 여전하다. 쓱쓱 싹싹 노련한 솜씨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아사도를 먹어봤다.

 

조만간,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만나보고 싶다.

이 곳은 나에게 영원하다.

,

다시 찾은 페루는 아름다운 쿠스코의 모습만 다시 기록해본다.

 

 

 

 

 

 

내가 찾은 1월은 쿠스코의 우기 한가운데에 있어 걷다가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그새 멈추곤 했다.

비구름에 가려진 하늘이 맑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좁은 골목길, 돌로된 벽들, 칸칸이 들어선 상점들

그 모습들이 그대로 쿠스코를 유지하고 있었다.

 

 

 

 

 

 

쿠스코를 넘어가는 언덕에서 본 마을의 모습-

붉은 지붕과 나즈막한 집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삭사이와만, 켄코, 푸카푸카라, 탐보마차이 등

우루밤바를 넘어가는 동안에도 잉카의 모습은 계속 볼 수 있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로 가는 길.

예전에 탔었던 기차는 무궁화호 보다 못한 시설로 좀 힘들었는데, 페루레일, 잉카레일이 모습을 확 바꿨다.

쿠션도 좋고 넓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간식도 준다.

 

아구아스 깔리엔테스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올라가는 길,

얼마전 일어난 산사태로 인해 배차시간도 너무 늦어져.. 거의 1시간을 기다려 올라가게 되었다.

 

 

 

 

 

 

엄청난 양의 돌이 무너져 버스가 이동하지 못해 중간에 내려 걸어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군인들이 도와주고.. 낑낑거려 올라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온 사람들은

아예 밑에서부터 걸어서 올라갔다고 한다.

그것보다는 낫다.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마추픽추다.

지난번에 찍지 못했던 늠름한 마추픽추의 모습을 담았다.

너무 아름다운, 역시 남미를 대표하는 유적지 답다.

 

 

 

 

유적지를 내려가며 만난 야마-

우아이나픽추 아래에서 자유로운 모습이다.

 

 

 

 

아구아스 깔리엔테스의 마을을 서성이던 중

움직이던 기차와 묘하게 잘 어울리던 마을.

 

 

 

 

다음날 이른 새벽 3,800m 고지를 넘어가면서

펼쳐진 고원지대와 유채꽃, 그리고 만년설이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면 혼자만 여기에 있어 부모님께 죄송한 생각이들고

신선들이 여기에 살았을까하는 묘한 생각도 들기도 했다.

 

이보다 더 밝은 모습이었는데 카메라가 잡지 못한

아름다움에 지금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고원지역을 지나 산중에 나타난 이 곳은 살리네라스 염전이다.

안데스 산맥에 숨어있던 소금들이 만들어낸 곳이다.

우기가 소금이 많이 녹았는데 건기때는 하얀 장면이 절경이라 한다.

 

실제로 한쪽에 흐르고 있는 물을 손가락에 찍어 맛보니

진한 소금맛으로 혀가 얼얼해질 정도다.

 

 

 

 

모라이 밭은 잉카인들의 농업기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산악지역에서 개발할 수 있는 농작물을 여기에서 실험했다고 한다.

실제로 맨 아래와 맨 위는 5도의 온도차이가 있다고 한다.

 

사진으로는 작아보이지만..

실제로 전체 모습을 보게되면 그 규모에 놀라게 되고

내려가 보면 그 높이에 놀라게 된다.

 

 

 

 

쿠스코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

 

친체로 마을 옆에 펼쳐진 넓은 평야가 너무 아름답던데

이곳에 조만간 공항이 들어설 예정이라 한다.

공사는 한국업체에서 한다고 하고..

 

또 하나의 자연이 사라질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날은 정말 바쁘게 돌아갔다.

말 그대로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봐왔던 것들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목적도 없이 또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플로리다 거리에서
탱고를 추고 계신 분들.

항상 팬 서비를 기가 막히게 해주셨는데
오늘은 내가 카메라를 들었더니
손가락으로 총을 쏴 주셨다.





전에는 산뗄모에서 하고 계시던데..
이번에는 여기에서 퍼포먼스를 하고있었다.

빨간통에 동전을 넣으면
한발짝씩 움직이며 다시 멈춘다.
그 움직임이나 표정이 정말 웃긴다.





한국의 서브웨이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저기선 저렇게 길다란 샌드위치를 만들어 줬다.
하나를 둘로 나눈 모습.

아르헨티나에서 먹던
저 얇은 햄과 치즈가 너무 그립다.





그리고 다시, 우리동네의 백화점인 아바스또로.
내가 돌아올 즈음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하이스쿨 뮤지컬 열풍이 불었었는데
아바스토에서도 홍보 행사를 하고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
아바스토 백화점에서, 그것도 장사가 안되는 곳인데
맛있게 보여서 주문했는데 이렇게 맛있는건 먹어보질 못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내 비행기는 새벽 출발이라 밤을 새서 가야만 했다.
그리고 저녁에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있어서 나가던중..

내 귀여운 친구들이 자신들도 나가서 내일 들어온다고 했다.
6개월정도로를 함께 했었는데..
아, 지금이 우리의 마지막이구나..

그만 기분이 울컥해져서
꼭 껴안고 울어버렸다.

잘 지내라구!
너희들이 정말 그리워.





나의 친한 친구한명은 다리를 다쳐버려서
계단이 많은 호스텔에 돌아오지 못하고
친구집에서 잠깐 머물렀었다.

극적으로 돌아오기 하루전에 연락이 되어서
그 친구집으로 찾아갔다.

우리 호스텔의 거의 모든 친구들에게 생일 파티를 해줬는데
볼리비아&페루 여행때문에 이 예쁜 친구에게는
파티를 해주지 못해서 이날 케이크를 사들고 갔다.

친구는 의자에 다리를 얹어놓고 있는 모습으로
나는 기부스에 한글로 elida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주었다.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그리고 우린 작별을 했다.





저녁을 보내고, 새벽이 되고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공항으로 갔다.

헤어짐이란 너무 아쉬운 법.
사람들과의 헤어짐도 힘들었지만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는것도 너무 힘들었다.

공항에서 함께 했던 언니와 헤어질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도착할때까지
그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시원함과 섭섭함.

너무 미웠던 이곳, 또 내가 너무 좋아했던 이곳.
난 한국에서 또 다른 생활을 시작하겠지만
여기서의 기억들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
남미에 있을동안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이틀정도의 여유가 더 있었더라면
파라과이까지도 생각을 했었을건데
아쉽게도 출국일은 너무 빨리 다가왔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바다인
마르델 쁠라따.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5시간정도가 걸리는데
상당히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늦게 찾아갔다.





터미널에서 바다가 어디있냐고 물으니
손가락을 저쪽으로 가리켰다.
우린 한참을 그 쪽으로 걸어왔다.

그랬더니 바다가 짠!하고 나타났다.





모래밭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아저씨와도
함께 얘기를 하고 사진도 찍고..

저 뒤의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계단에 앉아 한참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겨울인데도
발가벗고 수영하는 아이들.





모래사장을 거닐다가.





바닷가에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버스에 오르는데 직원이 다가와
몇시에 가고 싶냐고 물어봤다.
당연한걸 왜 묻지 하고 '5시'라고 말했다.

어머나!
2층에 올라오니 아무도 없는 것이였다.
알고보니 우리만 버스를 예약했던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버스칸에서 아주아주 편하게 왔다.
,
페루에서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길은,

아레키파 → 따끄나 → 아리까/이끼께 → 깔라마
→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 후후이 → 살타.

30시간 정도가 걸린듯한데
내 생일을 버스에서 보내버렸다.

중간에 아리까에서 조각케이크를 하나 사먹긴 했지만
역시 밖에서 생일을 보낸다는건 너무 서러웠다.
하나못해 호스텔에 있었으면 생일 파티라도 했을건데
아쉽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는길에는
이미 봤던 도시를 지나쳐 왔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고
우리가 봤던 뿌르마마르까의 소금사막이 겨울이라 그런지
덜 빛나고 있어서 조금 안타까웠다.

저번에 살타에 왔을땐 숙소를 구하지 못해
러브호텔 등등을 전전했었는데
이번에 살타에 숙소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너무, 너무 많았다.

굉장히 예쁜 숙소에 15페소를 주고 안착했다.





밤에 보는 살타의 대성당.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을거라고
생각을 못했었는데.. 너무 예뻤다!





내부까지 화려했던.





잠깐 슈퍼에 들렸을 뿐인데 이것 저것 잔뜩 샀다.
사면서 마지막 여행코스 자축하는 파티를 열기로 했다.

토마토와 소고기 소스로 만든 라비올레스,
소고기, 피망, 양파를 함께 볶은 요리,
토마토, 오이, 상추, 옥수수통조림
그리고 참치까지 넣은 스페셜 샐러드.

파스타를 제외하곤 못 먹을 맛이었지만
살타 맥주까지 곁들어 배 부르게 먹었다.





살타출신의 친구는 살타에서도 1시간 30분 정도를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chicoana'라는 동네에 살았다.
친구는 여기에 없었지만 가보고 싶어
물어물어 버스에 올랐다.

살타의 버스..라고 하기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버스와도 같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여기의 버스는 너무너무 깨끗했다는 것.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버스는 쓰레기장...





작은 케이크 하나를 사들고 가서는
친구의 여동생들에게 주고 헤어졌다.

굉장히 작은 마을이라 돌아다닐것도 없어
광장을 헤매던 중 어떤 아줌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난 루이스의 엄마야!'

친구인 루이스가 엄마한테 우리 얘기를 잔뜩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엄마는 한국인인 우리를 알아보고
지나가던중에 아는척을 한거였다.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고
엄마는 차로 근처의 마을까지 구경을 시켜주었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엄마가 점심을 사주셨다.
메뉴는 통닭과 샐러드.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서비스로 이것을 주었다.
언뜻보면 계란후라이와 감자튀김 같아 보이지만
잘 보면 생크림위에 황도,
그리고 사과를 썰어 올린거다.

아주머니의 센스는 놀라웠다.





엄마의 휴대폰에는 친구가 보낸 문자가 있었다.
우리를 할머니에게 인사시켜 드리라는것.

우린 할머니댁까지 가서 인사를 드리고
(강아지와도 인사를 했다)
정원 옆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며 얘기를 했다.

이것은 nisperro. 살구인듯 아닌듯..





다시 살타로 가기위해 마을 빠져나왔다.
친구가 예전에 우리에게 아빠는 담배농장을 한다고 했는데
여기가 그 농장이라고 했다.

친구가 상당히 부자였는데
그 원천이 여기었다.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살타에서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끝나지 않을것 같았던 약 한달 반 정도의
북쪽 여행이 끝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돌아가서 만난 친구들은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
,
condor를 보러가기 위한 장소인
cabanaconde의 근처에 있는 can~on de colca로 향했다.

콘도르는 아침에만 날아다닌다고 해서
새벽버스를 타고 무려 6시간이 걸려 도착을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버려 꼴까계곡에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버스에는 우리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내릴때 함께 내리면 되어서 다행이었다.

외국인의 입장권은 35sol(약12000원).
버스에서 부터 저 입장권을 팔았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입장권을 사라고 했기 때문에
어디가 입구인지도, 저 넓은 계곡 자체를 본다는것이
요금이 부과되는건지 알 수 없지만,
없으면 끝까지 표를 파는 사람이 붙어다녔다.





버스에서 내리면 콘도르 전망대로 가는 사람들을,
가는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새는 날아다니기 때문에
콘도르 전망대로 내려가지 않아도
여기서 볼 수 있었다.





하늘을 나는 콘도르.

늦게 도착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 날 볼 수 있었던 콘도르는
안타깝지만 세마리에 불과했다.

너무 활기차게 날아다녀서
카메라에 새를 잡는것 조차 너무 힘들었다.





꼴까계곡





이 날 콘도르를 보고서 아쉬운 마음이 너무 많이 들었었다.
그러던중 페루에서 함께 있었던 페루 친구와 연락이 되어서
우린 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다.

그땐 일찍 까바나꼰데에 와서 하루를 묶고,
또 알파카 고기도 먹었다.

그리고 아침일찍 여기로 다시 와서
셀 수 없이 많은 콘도르를 만났다.
입장권은 페루 친구가 샤바샤바한 덕분에 무료로!

그리고 인근 마을인 치바이로 가서 구경도 하고,
근처에 있는 수영장도 가고 꽤 재미있었다.

가장 아쉬운건 이걸 찍은 카메라가 고장이 나버려서
사진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
아쉽지만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
축제 당일.
집에서 대충 준비를 하고
광장으로 가볼까 해서 슬금 슬금 나왔는데
걷기는 커녕 움직이는것 조차 힘들었다.

물론 광장에서 축제를 구경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좋은 방법이라면 2층 레스토랑을 이용해도 되지만
날이 날인지라 모두 full이었다.





깨금발을 들어 겨우 찍은 광장에서의 사진 한장.
팔을 쭈욱 펴서 찍는다고 뭐가 지나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은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행렬이 지나가는 길이라면 좁은 골목길이라도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축제는 이렇게 분주함속에서 그대로 끝나버렸다.
,
아레키파를 상징하는 새인 콘도르가 있다는
cabanaconde행 버스를 예약하고 돌아왔다.

광장에서 마추픽추에서 만났던 친구를 또 만났다.
내일 우린 까바나콘데로 간다고 했더니
친구는 깜짝 놀라며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오늘은 전야제, 내일은 거대한 축제가 있다고.

아레키파의 축제는 상당히 큰 규모라고 해서
우린 다시 터미널로 가서, 2일 후의 버스로 변경했다.





다시 돌아온 광장.
한쪽 길을 사람들이 저렇게 올려 앉아 있었다.
전야제 행사를 보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우리도 어느새 무리속에 자리를 잡고
빨리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행렬이 시작되고
맨 먼저 말을 타고 나온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이 뒤로 미스 아레키파, 또 다른 유명인사들이 나와
인사를 하고 차례차례 퇴장을 했다.





트럭을 타고 나온 사람들.
아레키파의 명물을 소개하는 것이었나,
이 사람들은 물고기를 들고나와 보여주었다.

다른 팀들도 나와서 특산품을 보여주곤 했는데
외국인이 많았는지라 여기 사람들도 외국인을 상당히 챙겨주었다.

나는 통 감자 하나를 받았다.
술도 줬는데 옆에 사람이 그 술을 먹고 넘어갈뻔 한지라
난 미리 포기를 해버렸다.
그 술은 도수가 엄청 쎈것 같았다.





축제라 함은 절대로 춤이 빠질 수 없다.
어김없이 신나는 축제 행렬.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가면을 쓰고 나타난 이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불러냈다.
나도 사진을 찍다가 얼떨결에 나가서 함께 춤을 췄다.
꽃가루 세례도 받았다.

진짜 축제보다 더 재미있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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