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날인데 나는 집에 전화도 못했다.

엄마 아빠는 항상 날 걱정하고 계실텐데 말이다. 나는 나쁜 딸이다.

 

사실 변명거리가 좀 있다.

아침부터 비자연장 때문에 엄청나게 정신이 없었다.

도움을 좀 받고 싶었는데 이오바나 아줌마도 다니엘도 없어서 고생을 조금 했다.

아무튼 이러한 핑계들로 인해 집에 연락을 못했고 이틀 후 캐나다에서나 나의 존재를 알렸다.

 

 

 

 

어제 숙소에 도착했을 때 잠깐 봤던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쿠바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다가 아침식사가 너무 적게 나온다며

빵 세쪽에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는 거다. 빵세쪽? 여긴 항상 빵에 햄을 끼워줬었는데.

오늘 아침 조식을 먹을 때야 이해가 갔다. 나름 예쁘게 비쥬얼을 바꾼 것 같은데 부실한건 동일하다.

 

난 쿠바에서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체류를 했다.

쿠바에 입국할 때 작성하는 비자는 30일까지만 가능하고 이 후 부터는 연장을 받아야 한다.

사실 난 불법체류자였다. 진작에 이민청에 갔어야 했는데 돌아다니느라 시간을 놓친거다.

그래서 오늘은 반드시 연장을 해야했다.

 

우선 우표(수입인지)를 사야해서 나갈 채비를 하고 은행으로 갔다.

은행은 안에 있는 경비아저씨가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는데 앞에 서 있으면 문을 열어준다.

아무 은행이나 가서 앞에 서 있으니 아저씨가 문을 빼꼼히 연다. 우표를 파냐고 물으니 판다고 한다.

들어가려고 하니 나보고 못 들어온다고 한다. 이유는 내가 반바지를 입어서라고 한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반바지가 무슨 문제냐고 하니 옷을 갈아 입고 오라는 것이다.

화가나서 옆으로 빠졌더니 문 앞에 반바지 착용금지 표시가 떡하니 있는 것이다.

 

할 말도 없고 해서 일단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긴 바지로 갈아입었다.

너무 더운데 여기서 긴 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어쩔 수가 없다. 다시 은행으로 가서 아저씨한테 긴 바지를 입고 왔다고 얘기를 했더니

아저씨가 하는 말이, 이제 들어올 수는 있지만 정전이 되서 시스템이 꺼졌다는 거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우표를 사야지 뭐든 할 수 있는 건데 모든게 멈췄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일단 오비스포 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비자연장에 대해서 좀 물어보려고 이오바나 아주머니를 찾았더니 병원에 갔다고 한다.

아저씨가 암에 걸렸다고 해서 수술을 받으러 간다고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보다.

급한 마음에 다니엘을 찾아가서 방을 두드렸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역시 인포투어였다.

 

인포투어에 찾아가서 이민청의 위치와 필요한 준비물을 다시 안내받았다.

일어나려는 순간 설문조사를 해줄 수 있냐고 하길래 나도 도움받은게 있으니 흔쾌히 작성을 해주었다.

 

이 후 근처에 있는 은행을 두 곳 방문하였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은행에서는 더이상 돌아다니기가 힘들어 한 시간 정도를 앉아있었던 것 같다.

전기는 계속 들어오지 않았다. 더 앉아 있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시간이 아까워서 밖으로 나갔다.

지난번에 다녀오지 못했던 혁명박물관이 갑작스럽게 생각났다. 여기로 가기로 했다.

 

 

 

 

혁명박물관은 예전에 대통령궁이었던 곳을 혁명 이후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의 외관은 굉장히 화려하다.

 

 

 

 

입장료를 물어보니 8쿡이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비싼 입장료가 없었다.

그래서 돈을 내지 않고 뒤로 빠져서 둘러보니 정말 8쿡이었다. (현지인은 8MN)

울며 겨자먹기로 8쿡을 지불하고 티켓을 받았다.

 

 

 

 

 

 

 

 

내부도 굉장히 정교하고 깔끔하다.

예전에 대통령 집무실이었던 곳과 의회실도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1차, 2차 혁명에 대한 사건과 인물들에 내용들도 굉장히 충실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 있었던 자료들은 이 곳의 일부인 듯 하니 아바나를 봤다면 산티아고는 안봐도 좋을 것 같았다.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는 1층에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코너였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사진 하나 찍기 조차도 힘들었다.

쿠바의 전 대통령이었던 독재자 바티스타, 레이건 전 대통령, 아빠 부시, 아들 부시 의 그림이 있는 곳이었다.

각각의 그림 옆에는 이 들을 비꼬는 글귀가 적혀져 있다.

 

Fulgencio Batista : 혁명을 일으키게 해줘서 고마워 (a Hacer la Revolucion)
Ronald Reagan : 혁명을 강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a Fortalecer la Revolucion)
George Bush Sr. : 혁명을 강화하게 해줘서 고마워 (a Consolidar la Revolucion)
W.Bush : 돌이킬 수 없게 해줘서 고마워 (a Hacer Irrevocable el Socialismo)

 

 

 

 

잠시 밖으로 내다보니 쿠바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외부전시관으로 이동해서 그란마호를 보러 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곳에 그란마호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다양한 항공기와 전투용 차량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한 쪽에는 새로운 나라를 만든 영웅들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그란마호는 유리창 안에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야만 볼 수 있다.

실제로 사용했던 그란마호는 아니고 모형이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보관을 하는지 참.

 

 

 

 

그 옆으로 항공기들과 탱크, 장갑차들이 있어서 돌아다니며 볼 수 있다.

 

구경을 하던 중 사람을 부르는 소리- 츳츳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을 보니 여기를 지키고 있는 군인 한명과 나 밖에 없다.

잘 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또 츳츳 소리가 들린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 서 있던 군인이 고정된 자세에서 눈만 나를 향하고 왔다.

 

푸하하 정말 너무 웃겼다.

직업상 열중쉬어 한 자세에서 움직이지는 못하고 동양인 여자애가 있으니

신기한데 다가올 수는 없고. 그래서 츳츳거리며 내가 자기를 보도록 했던 것이었다.

가는 길에 군인앞을 지나며 올라하고 인사를 해주었더니 그제서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다.

 

 

 

 

지금쯤이면 전기가 들어왔을까 싶어서 밖으로 나갔더니 은행은 정상근무를 하고 있다.

가는 길에 문이 열린 한 은행에 들러 우표를 구입했다.

그리고 콜렉티보 택시를 타고 인포투어에서 알려준 곳으로 이동했다.

 

내려서 내가 알고있는 곳 주변을 얼마나 돌았는지를 모른다. 아무리 봐도 못 찾겠다.

여기를 가려고 10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물어봤던 것 같다.

마지막에 물어본 할아버지가 길을 가르쳐줘서 찾아갔는데 거기에도 없다.

그 자리에서 서 있었더니 그 할아버지가 다시 와서 나를 이 건물에 데려다 주었다. 울뻔 했다.

간판도 아무것도 없는 이 건물이 이민청이라고 한다.

 

사람이 엄청 많다. 쿠바에서 줄을 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언뜻 보기에 줄이 없기 때문에 안 설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아주 큰일이 나는거다.

반드시 누가 마지막이냐고 물어보는 "울띠모?"를 외쳐야 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울띠모"라고 말하면 그 사람 다음에 들어가면 되는거다.

 

그렇게 한시간을 기다렸고, 내 차례가 되어서 비자연장 업무는 2분만에 끝이 났다.

 

** 비자를 연장하는 방법

 

쿠바 비자는 기본이 30일이며, 이 후는 연장을 해야만 한다.

연장은 최대 2번까지 가능하다. 즉, 쿠바에서 관광비자로는 최대 90일까지만 체류할 수 있다.

아마 인터넷을 찾아봐도 잘 없을 정보인 것 같아서 고급정보 풀어봅니다.. 헤헤

 

이민청 주소 : Calle 17 y J (e/ K y J. 번지가 없다. 베다도에 위치하고 있다)

가는방법 : 택시가 가장 편리하다. 주소를 보여주고 데려달라고 하면 된다.

               나처럼 콜렉티보 택시를 탈거면 Linea 방향으로 가는 택시를 탄 후에 Calle 17로 와야 한다.

               간단히 보자면, 지도에서 나시오날 호텔 뒤로 2블럭 정도를 걸어올라오면 된다.

               간판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건물 사진도 함께 올린다.

 

준비물 : 가장 먼저 은행에 들러 25쿡짜리 우표(Sello)를 사야한다.

            여권, 비자(입국신고시 돌려받은 절반), 우표, 여행자보험 증서, 까사 영수증(주인에게 써달라고 하면된다)

            항공권은 혹시 모르니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발급방법 : 이민청 안으로 들어가서 건물의 끝까지 들어가면 Extranjeria라고 적힌 곳이 있다.

               여기서 "울띠모?"를 외친 다음 대답하는 사람 옆에 앉은 후 그 사람 다음으로 들어가면 된다.

               내 차례가 되면 서류를 주고, 비자종이 뒷면에 30일 연장스티커를 붙여주면 완료된다.

               대기시간은 무한대이며, 비자연장 시간은 5분 이내로 완료된다.

 

 

 

 

택시를 잡으려 나시오날 호텔 앞으로 가서 손을 흔드니 금방 콜렉티보 택시가 잡힌다.

카피톨리오에서 섰다가 앞으로 조금만 더 가자고 해서 중국촌쪽으로 갔다.

이유는 점심을 먹으려고. 아침부터 비자때문에 정신없이 돌아다닌 탓에 배가 너무 고팠다.

 

 

 

 

 

 

전 날 들렸던 빨간집의 중국집으로 향했다.

밖에 앉기 보다는 에어컨이 절실해서 물어봤더니 내부에 에어컨이 나온다고 한다. 얼른 들어갓다.

나 혼자 먹는거라 메뉴를 많이 시키는 못하고.. 달콤한 춘권과 돼지고기 볶음밥을 주문했다.

음료수까지 내가 먹은 음식의 모든 금액이 6쿡이다. 중국집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집에 가지고 갈 Legendario 럼주를 한 병 사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바라데로에 다녀온 후 아직까지 다니엘을 만나질 못해서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다.

다시 내 방으로 와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

문을 여니 경서오빠와 뉴페이스가 찾아왔다.

 

아침부터 찾았는데 어디갔었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에고 오빠한테 인사할 정신도 없었구나. 오늘 하루의 일들을 풀어놓았다. 오늘 정말 힘들었다.

조금 있다가 함께 어제 못 본 일몰을 보러 말레꼰에 함께 가기로 했다.

 

 

 

 

 

 

오늘 구름이 별로 없다. 조금 일찍 도착을 해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서오빠는 처음에 말레꼰으로 오는 길에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돈도 뺏겼다고(?) 한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우리 앞에 다가와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절하는 방법은 우리 앞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No Gracias"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도 알았다며 쉽게 물러선다.

 

 

 

 

 

 

 

 

뉴페이스가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 앉아 있으니 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수다를 떠는 사람들, 그냥 멍하게 앉아 있는 사람,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 ㅋㅋ

 

 

 

 

어느새 해가 구름뒤로 넘어가고 그 길로 사라졌다.

이 날이 나의 마지막 말레꼰이었다. 다음날 다시 오려고 했으나 오지 못했기에.

 

다음 코스를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데 이 남성 두분은 아직 말레꼰의 치맥을 못 먹었다고 한다.

저번에 먹으러 왔었는데 닭이 떨어졌다고 못 먹었다고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나랑 가면 먹을 수 있어"라는 뜬금없는 나의 말을 믿고 치맥집으로 향했는데

역시 나는 쿠바와 잘 맞다. 푸짐한 치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인 1치킨(닭다리2개)을 주문하고 맥주는 만장일치로 부까네로 푸에르테를 시켰다.

쿠바 맥주는 역시 부까네로다. 맛있는 맥주도 없지만 그나마 이게 가장 맛있다.

 

옆 테이블에서 기타를 가지고 와서 노래를 불러서 공짜로 음악도 듣는다.

조금 있으니 건너편 까바냐 요새에서 9시를 가리키는 대포 소리도 들린다.

주변에 돌아다니던 개들이 모여든게 조금 흠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재밌었다.

 

뉴페이스는 말레꼰을 걷는게 무서웠다고 했다.

그 이유인 즉슨 혼자 걷다보면 어느새 사람들이 다가와 "치카치카"한다는 것이었다.

"치카"는 스페인어로 여자라는 뜻인데,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이 참 많다.

남자들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삐끼들인데 남자들이 좋다고 하면 연결을 시켜주는거다.

이게 얼마나 귀찮은 건지, 쿠바를 여행한 모든 남자들이 대부분 이 때문에 쿠바가 싫다는 거다.

실제로 우리 숙소에 머물던 캐나다인 필립은 이것 때문에 질려서 일찍 쿠바를 떠버렸다.

 

경서오빠가 겪은 일은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흑인여자 괜찮냐고 물어봐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인종차별이 될까봐 흑인여자 괜찮다고 대답을 했더니

아주머니가 놀라면서 연결을 시켜준다고 했다는 거다.

그제서야 이해를 한 오빠는 아니라고 자기는 관심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를 듣다가 우리는 너무 웃겨서 쓰러질 뻔 했다.

 

 

 

 

 

 

집에 가기 싫어서 택시를 타고 째즈클럽으로 갔다.

오늘 간 곳은 "La Zorra y El Cuervo"라는 곳인데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다.

입장료는 10쿡인데 칵테일 2잔이 포함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가 꽤 멋있다.

생각보다 아담한 분위기였는데 벽에 걸린 액자들이 굉장히 멋있다.

 

** La Zorra y El Cuervo

주소 :  Avenida 23, entre N y O

위치 : La Gruta 옆에 있다. 택시타고 이름을 말하면 다 안다.

 

 

 

 

첫 잔은 시원한 다이끼리로, 두번째 잔은 모히또로 마셨다.

다이끼리의 맛을 너무 늦게 깨달은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 본 째즈그룹은 Oscar Valdes이다.

그룹이 아니라 리더인 아저씨 이름인 것 같은데 여러 연주자들이 함께 한다.

째즈라기 보다는 쿠바 악기를 이용한 쿠바 음악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놀랍게도 퍼커션을 연주하는 사람은 일본인이었는데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지금까지 본 퍼커션 연주자 중 가장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연주속도와 정교한 박자들 정말 놀라웠다.

 

 

 

 

우리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멕시코에서 온 째즈 밴드였는데 앞의 공연이 끝나고 같이 연주를 했다.

앞 팀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던지라 조금 어설프게 느껴졌고

급조한 느낌이 확 나서 조금 아쉬웠다.

 

쿠바의 색소폰 연주가 기가 막혔었는데, 멕시코 연주자들이 들어오면서 음이 좀 방해된 느낌이다.

조금 듣다가 숙소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나와서 일어섰다.

 

지금 며칠째 하루에 한명씩 쿠바를 떠나고 있는데, 내일은 뉴페이스가 떠난다.

그 다음 날은 나, 그 다음은 경서오빠 차례이다.

우리들 나름대로 마지막을 잘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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