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중부 지역을 빡빡한 일정으로
돌아다닌터라 이제부턴 쉬면서 돌아다니자고 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지루한 법, 우린 박수나트로 향했다.

길도 모르면서 산위를 올라가는데
오토릭샤를 타고 올라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잠시 부럽기도 했고.


 


 

박수나트는 산 끝에 위치했다.
멀리서는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는데
점점 갈수록 하얀 줄기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갈 길은 아직 멀었다.


 



드디어 도착.
웃옷을 벗은 인도 사람들이 한창 놀고 있었다.
우리는 소심하게 발만 담그고 찰랑 찰랑~

맞은편으로 건너가 바위위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거기서 현지인들과 사진도 찍고 얘기도 나눴다.


 



다시 맥그로드 간즈로 돌아와 우선 허기진 배를 채우다.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그 메뉴, 라면이다.

 

 

 

 

맥그로드 간즈에서 다람살라로 내려와서

다람살라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노블링카로 향했다.
빡빡하게 앉아서 가는 버스가 정겹다.

 

 

 

 

 

 

 

 

일본불교협회에서 지었다던데 시설은 상당히 세밀하면서도 예뻤다.
인도 전통 물건에 관한 것을 파는 곳도 있었고
역사를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한 박물관도 있었다.

규모는 그리 작았지만 인형을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만 많은 요금을 받는건 잘못됐다구..


 


 

노블링카로 가는 길엔 작은 꽃들이 피어있었는데
그앞에서 만든 조그만 꽃다발.


 


 

버스 정류장 앞에서 팔던 모모.
튀긴것과 찐것이 있는데 둘다 맛은 꽤 있었다. 귀엽게 생겼다.

 

 

 

 

다람살라에만 파는 빵이라고해서 사봤는데 식감이 상당히 퍽퍽하다.

그런데 구운 빵과 딸기잼이 묘하게 잘 들어맞아서 꽤 고소하다.

이걸 어떻게 다 먹어.. 라고 생각했지만 씹는 재미가 있어 끝까지 먹게된다.

 

 

 

 

그리고 어느 전망 좋은 곳에서 사먹었던 달달한 케익과 차 한잔.

,

자이살메르에서 델리로.
델리에서 맥그로드 간즈로 왔다.

맥그로드 간즈는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곳으로
수많은 티벳사람들이 살았고 유명한 달라이 라마가 있는 곳이었다.


 

 

 

안개가 잔뜩 낀 날씨이지만 이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다람살라에서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따라온 이곳은
산 저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구름에 걸친 산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있는 절경을 가지고 있었다.


 



남걀사원으로 향하는 길.
예쁜 돌들도 이루어져 있었다.


 



남걀사원.
불교를 믿지만 내가 아는 부처님과 생김새가 달랐다.
오랜만에 부처님께 여행 하는 동안에 좋은일 많이 가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코라.
티벳 소녀에게 길을 물어 봤는데
우리를 데리고 한참을 돌고 한참을 내려와서 코라라고 알려주었다.
너무 고맙지만 너무 미안하고..

여기엔 저렇게 색색깔의 천을 걸어 놓았는데
자세히 보니 천에 그림과 글이 그려져 있었다.
지나가는 길엔 색이 칠해져 있는 돌도 많다.


 



달라이라마가 거주한다는 곳이라던데..
이땐 달라이라마가 레에 있어서 만날수는 없었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재미난 길-

 

 



다시 맥그로드간즈의 중심으로 돌아왔을땐 많은 스님들과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촛불의식 같은것을 준비중이었는데 팜플렛을 보니 베이징 올림픽과 관계된 것이었는데
뭔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스님들과 티벳 사람들, 그리고 관광객까지
전부다 함께 줄지어 마을을 돌았다.

,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 밤을 보내고
이윽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을땐 저기 모래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침대에 가만히 앉아 해만 계속 보았다.

 

 

 


몰이꾼들은 따뜻한 짜이와
삶은 계란, 그리고 토스트를 잔뜩 구워 주었다.
아침을 먹고 드디어 모래밭으로 출발했다.


 


 



유명한 샘 사막은 아니었지만
우리를 이끌고 간 곳은 실망하지 않을 곳이었다.
황금빛 모래가 잔뜩 있었다.

드디어 모래 사막을 잠시 걷기로 했다.

 

 

 

 

 

 

낙타를 지키던 아이.
그리고 쉬고 있는 낙타들-


 



한참을 걸어 올라가 모래무덤이 보였을때
한 몰이꾼은 저쪽반대편으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굉장히 높은곳이었는데 째빨리 내려가더니 저렇게 앉아서는 우리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발이 참 무겁다.
나역시 처벅처벅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모래위를 걷는건 너무 힘든일이다.


하지만 이 느낌을 언제 또 가져볼까 그 순간 재밌으면 그만이다.
모두들 신나게 모래무덤에서 내려와 각자 사막을 즐기기로 한다.

 

 



빠뿌는 항상 두번째 아니면 세번째로 걸어갔다.
그래서 내 앞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는데
드디어 1등자리를 꽤찼다.

앞을 보고 가면 마치 나혼자 걷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낙타 사파리를 끝내고 빠뿌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돌아온 숙소에서는 릭샤를 타고 동네구경을 시켜주었다.
마을 한켠에 위치한 호수와 골목들은 사실 별 구경거리는 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간 곳에서는 해가 지는 자이살메르를 볼 수 있었다.

일몰을 보고있자만 왠지 모를 차분함과 벅참이 함께 다가온다.


 



자이살메르 성-


 



자이살메르를 떠나는날.

타이타닉에서 일하고 있는 가지와 나는 동갑이다.
하지만 가지는 나보다 훨씬 어른 스러웠고
그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어서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너와 나의 화창한 미래를 기대해보자. 안녕, 가지!

,

내 일정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질수가 없는 자이살메르다.
여기로 오는 기차는 밤 11시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플랫폼에 들어 왔다.

죽은듯이 자다가 일어났는데 그건 정말 고역이었다.
사막지대로 갈수록 모래가 많아 지면서
달리는 기차안으로 상당한 양의 모래가 들어왔다.
이 모래를 마시면서 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자이살메르 기차역 앞에는
낙타사파리 투어를 하는 여행사들이 많이 나와있다.

1박을 밖에서 해야된다는 생각에 한국인이 많은
타이타닉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만난 사람은 우리에게
타이타닉보다 좋은 조건으로 투어를 해주겠다고 했다.
흔쾌히 예스를 외쳤지만 역시 도착해서 보면 아니었다.

결국 우린 타이타닉으로 향했다.


 



여기 주인인 폴루는 한국말을 할줄 아는것을 넘어서서
농담을 할줄 아는 수준에 다다랐다.
노래 부르는것을 아주 좋아했고..

가끔씩은 이렇게 불쑈도 보여준다고 했다.
지루하지 않은 밤이 지나갔다.

 

 

 

 

사막에 대비해 사둔 모자는 창모자였지만
폴루는 이런 모자로는 얼굴이 탈 수 있다고 창이 굉장히 큰 모자를 씌워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자가 아예 없었건만.. 나한테만.. 헤헤

 

 


그리고 지프를 타고 낙타가 있는 곳으로 이동.

어느 낙타를 탈지 모르는 상황에서
빨간 터번을 쓰고 있는 몰이꾼은 자신의 낙타에게로 오라고 했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사람과 외국인을 많이 만나봐서
약간의 한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알지만
내 낙타의 몰이꾼은 전혀 말을 할 줄 몰랐다.

내 모자가 날아가지않게 꼬옥 묶어주고
발걸이를 걸어주고 나서는 항상 'OK?'만을 물어보았다.


 


 

가자 빠뿌!

 

 



한참을 가서 드디어 점심시간.

쉬고 있는 나의 낙타의 이름은 빠뿌.
다른 낙타들의 이름이 비, 장동건 등인것에 비해
빠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카메라를 들자 딱 내쪽으로 쳐다봐주었다.
센스 최강!





점심은 묽은 커리 약간과 그자리에서 손수 만든 짜파티,
그리고 무슨 뿌리를 썰어 튀긴 것을 주었다.
눈치가 빠르면 숟가락을 얻을 수 있었고
접시만 쳐다보다가는 손으로 먹어야만 했다.


 


 



잠시 오아시스에 쉬다 갔다.
내 상상과는 다른 오아시스 였지만..
나의 빠뿌를 제외한 모든 낙타는 물을 마시고 출발했다.

우리는 3D입체 별을 보기를 원했지만
마침 저날은 오지않던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안타깝지만 별대신 구름에 가려진 달만 쳐다보았다.


 



밤이 되면 역시 캠프파이어다.
말은 거창하지만 저 안에 보면 우리가 사온 닭고기와 감자가 잔뜩 들어있다.
출발할때 같이 출발한 살아있던 닭들이 어느새 호일안에 들어있었다.

마음이 조금 짠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빠뿌는 다른 낙타들과는 달리 걸을때 실룩실룩
내리막을 내려올땐 퐁퐁 뛰어 갔다.

그덕에 목이 아파 감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약간의 몸살까지 얻게 되었다.

쉬기 위해 침대위에 누웠고
그 사이로 종종 별들이 보였다.
사막에서의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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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 역에는 정말 끝까지 따라다니는 사기꾼이 많은데
알면서도 당하는게 정말 이 곳인거 같다.

끝까지 뿌리치고 겨우 릭샤를 잡으면  다 사기꾼과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번의 실패후 잡은 릭샤꾼은 다행이도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우리가 원하는 호텔을 알고 있지 못했다.

결국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이 이상한 곳을 가르쳐줘서 엉뚱한 곳에서 하룻밤을 묶에 되었다.





침대칸이 아닌 기차는 처음이어서 모르는 아저씨와 함께 갔다.
우리가 묶은 숙소는 아마도 악덕 업체였을 것이다.
배낭을 맡아주는데 개당 50루피를 요구했다.

결국 다른 숙소에가서 배낭을 맡아줄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맡아 주겠다고 했다. 보관료는 무료.
너무 고마운 마음에 점심과 저녁은 호텔과 함께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다.


 


 



자이푸르는 핑크도시라고 불리우고 있었는데 사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던 도시이다.
하지만 저 문을 들어서는 순간 생각이 180도로 변하였다.


 


 

 

 



굉장히 큰 마을이 전부다 저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1층은 거의가 상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아직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자이뿌르의 또다른 도시의 모습이었다.

 

 


 

하와마할.
이게 보고싶어서 한참을 걸었는데 공사중이어서 정말 아쉬웠다.


 


 

인도에서 소는 교통체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오토릭샤를 타고 이동하는 중-

앞에 달리던 오토릭샤에 탄 어린이들이 너무 귀엽다.


 

 

 



자이푸르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영화이다.
라즈 만디르 극장에 가서 무슨 영화가 상영중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표를 끊어버렸다.

극장 시설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했다.
의자가 딱딱했지만 뒤로 몸을 젖히면 의자가 뒤로 눕기 때문에
의자의 가장자리에 머리를 기대고 편하게 봤다.

 

 

 

 

 

 

우리가 본 영화는 파트너라고, 네 남녀의 러브스토리인데 정말 재미있다.

각각의 캐릭터가 정말 잘 살았고 코믹스러움도 인도스러움도 기가막히게 잘 담아냈다.

특히 여자주인공은 꽤 유명한 연예인이지 나중에 산 잡지의 표지모델이기도 했다.

 

인도 사람들은 영화를 정말 즐겁게 보는것 같다.


웃긴 장면이 나오면 한껏 웃어주고
놀랄 장면이 나오면 소리지르면서 놀라고
좋은 장면이 나오면 박수까지 치면서 함께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되어 그들과 함께 느끼는 것 같다.

조금 새로웠던 건 한참을 재밌게 보고 있을 때, 화면이 정지되고 인터벌이란 글자가 뜬다.

중간에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자이푸르에는 그 유명한 라씨왈라가 있다.
셋집이 쪼롬히 붙어있는데 첫번째 집이 원조이다.

하지만 저 가게는 일찍 묻을 닫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두번째 집으로 향했다.


 


 



요구르트와 같은 라씨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바나나라씨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라씨의 시큼한 맛을 뒤로하고 바나나의 맛은 너무 맛있다.
처음으로 맛있다고 느낀 라씨였다.

 

나중에 들었는데 원조 라씨왈라에서는
플레인 라씨만 판다고 했다. 역시 원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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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 아그라성

from = asia =/* india 2008. 1. 17. 17:20

델리에 있는 붉은성을 보고 나면

아그라성이 별로 새롭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지만

우린 붉은 성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아그라성으로 향했다.


 



아그라 포트역으로 갈때만해도 저기가 어딘지 몰랐는데
그 굉장한 성벽은 아그라 성의 것이었다.

입구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붉은 아그라성의 모습은 가슴을 떨리게 했다.



 



성의 내부는 여러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구조도 꽤 복잡한듯 보였지만 사람들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가면 문제가 없었다.

 



 



자이뿌르로 가는 기차는 한참 뒤에나 오기 때문에 성에서 편안하게 쉬어 가기로 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역시 사람구경은 시간 가는줄을 모른다.

예쁘게 펀자비를 차려입은 여학생들은
단체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난 또 그속에 끼여서 증거를 남겼다.

아마 여기에서 현지인들과 사진을 가장 많이 찍지 않았나 싶다.

너도나도 다가와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것도 자신의 카메라가 아닌 나의 카메라로.





성 건너편에서는 멀리 타즈마할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성에서도 타즈마할과 같은 대리석으로 만든 건물도 즐비했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즈음 또 한 번 앉아 한참을 쉬어갔다.

 




너무나 귀여운 꼬마 아가씨들.
한쪽은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한쪽은 시종일관 웃음으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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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 타지마할

from = asia =/* india 2008. 1. 17. 17:15

우린 타지마할에 가기 위한 계획을 짰다.
타지마할은 마음내킬때 갔다오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생각한 내용은 달랐다.

어떻게 하면 피부를 덜 태울수 있을까??

먼저 갔다온 사람을 만났는데 한시간 있었을 뿐인데 살이 새카맣게 타있었던것이다.
안그래도 카주라호에서 너무 많이 태워서 걱정이었는데
여기에서도 태운다면 한국가면 무리수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결정은 아침 일찍 타지마할에 들어가서
대충보고 해가 뜬 다음의 타지마할을 구경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다음날 일찍 출발했다.


 


 


 



밖에서는 철저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던 이곳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 아침이라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던 관계로 좋은 자리에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잠시 후 드디어 햇빛이 들어서고 타지마할은 은빛으로 변했다.

그늘진 곳에서 아름다운 대리석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덥고 답답하고 이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예쁘게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현지인을 보는 구경 또한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면 한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이렇게 아름답고 거대한 건축물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햇빛이 들어오고 난 뒤로 부터는 이곳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늘아래 쉬고있는 사람들과 우리는 기념촬영을 계속 해댔다.
꼬마아이들은 자기를 찍어주길 원했는데 어른들은 우리와 함께 찍기를 원했다.

내가 찍어온 아이들을 하나하나 기억한다면
우리를 찍어간 그 사람들도 사진을 보면서 나를 기억하겠지?

 




나갈까 하던 찰나에 만난 사람은 전날 카주라호에서 만난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곤 좋은 장소를 소개해주겠다고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아 이런곳이 있었구나!
깜깜한 어둠속에서 보이는 새하얀 타지마할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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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까지 오는길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분명히 어제 터미널에서는 7시 출발이라고 하였는데
미리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 들은 이야기는 7시 30분이라는 것이다.
아침의 30분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말이지.

아그라의 버스는 인도여행을 하는동안 탔던 버스중에 가장 열악한 환경이었다.
철조물을 갖다 붙여 만든듯한 버스는 어쩐일인지 잘만 굴러다녔다.
단, 포장 도로에서도 철조각들의 흔들거리는 소리는 절대로 그치지 않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즈음
우리 버스에는 기사부터 안내원, 손님, 심지어는 짐조차도 남아 있질 않았다.

그와중에 옆의 출발하기 직전의 기사는 우리에게 다가와 아그라에 가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했더니 버스를 체인지 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버스가 바뀌었다고 생각을 하고

우린 무거운 배낭을 들고 좁디좁은 버스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출발한지 20분정도가 되었을때 안내원은 돈을 내라고 했다.
분명 잔시에서 아그라까지의 요금을 지불했는데..
이미 냈다고 하니 그건 조금전의 버스이고 이 버스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버스를 갈아타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갈아타라고는 말을 했지만 선택은 너희가 하는 것이다.
정말 큰것을 깨달았고 일단 탄 구간만큼의 금액은 지불하고
뒤에 따라오고 있는 우리의 버스로 다시 갈아탔다.

 




아그라 포트역에서 만난 스님은 감기가 걸렸는데 약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건강하고 건강한 나는 과감히 내 약의 3분의 2를 떼드렸다.
약을 준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었지만 나중에 감기에 걸리고 나서는 이 약이 아쉬워졌었다.

난 여행을 다닐땐 절대로 한국음식은 먹지 않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뜻대로 안되는 곳이 바로 인도인 것 같다.
아그라 역시 카주라호 처럼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굉장히 많았다.

인도 음식이 다양하지 않은 관계로 한참을 질려했던 우리는
가장 유명하다는 가게로 들어가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살기위해 먹으려고 했던 오므라이스는 의외로 맛있어서 고생했던 아침을 싹 잊게해주었다.


 


 


 

 

 



나와 함께 다닌 언니는 사진찍는 것을 좋아했는데
작품을 보면 이런사람 저런사람 죄다 사람만이 찍혀있었다.
자연도 관광지도 좋지만 사람에게서 풍기는 매력은 분명 그것들과는 달랐다.

저녁이 되어 무얼할까 생각한차에 뒤에있는 시장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거대한 시장은 갖가지 풍경을 다 만날수 있었다.

 

 

 

 

 


그리고 항상 카메라를 보면 쫓아오는 아이들.

꾸임없는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카메라를 보고 졸졸 따라오면서
찍어주겠다고 하면 딴청부리는 새침떼기 꼬마.


 



옆의 약국엔 사진찍지 말라고 호통치는 아저씨가 있었고
여기 약국엔 우릴 즐겁게 바라봐주는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가 묶은 라즈 호텔의 주인 아저씨.
한국인들이 쓴 방명록을 보여주며 자랑거리라고 으쓱대셨는데
정작 방명록에는 '잠만 자고 버스는 예약하지 마세요'
'아저씨 돈 관계에서 사기를 잘 치니깐 조심하세요'라는 의외의 문구가 가득했다.

차마 아저씨에게는 알려줄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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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사원을 빠져나왔다.


 



한국인을 많이 만나본 카주라호의 사람들은 다들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특히나 우리 일행은 여자뿐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꼬마들 까지도 말을 걸고 지나갔다.
지긋지긋한 현지인들의 한국말에 기분도 상하고 열도 꽤 받았을 즈음
우리에게 다가온 아이들은 의외로 우리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인도사람들은
카메라만 보면 다가와서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에게 다가온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 였는데 순수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하지만 이 순수한 아이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또 다르게 변할까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인도의 모습도 대부분 관광객이 만들었을 것인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두려웠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이들은 마냥 즐거웠나 보다.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싶다고, 시바를 본적이 있냐고,
본적이 없으면 우리집에 있는데 보여주겠다고.

미안한 마음이 잔뜩 들었지만 그 마음만은 받아들였다.


 


 



카주라호에서는 적어도 2박 3일은 있자고 생각했었는데
관광객에 그것도 한국인에게 찌들여 버린 카주라호 모습에
우리는 일찍 뒤돌아 서게 되버렸다.

인도의 버스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안좋았다.
저런 버스를 타고 10시간씩 다닌걸 보니 우린 참 대단했다.

아침일찍 버스를 타기위해 나섰는데 버스는 오질 않았고 오후 버스를 타야만 했다.
덕분에 미리 끊어둔 기차표는 환불을 했고 아그라로 가는 버스조차 놓치고 말았다.

 

 


 

 

 

 

 

버스터미널 근처에는 항상 사람이 붐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버스표를 검사하는 아저씨.

 

 



잔시로 가는 버스 안.
물을 파는 꼬마들 역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라댔다.
자신들이 찍혀있는 사진을 보고 나면
이 아이들은 물을 파는게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 누구도 자고 가지 않을 잔시에서의 하룻밤.
잔시는 관광객이 없는 탓에 호텔에 흔하지 않았고 호텔은 하루에 600루피 정도를 요구했다.

그 와중에 만난 한 아저씨는 끈질기게 우리에게 따라 붙었다.
언뜻보면 사기꾼처럼 보였는데 도와주겠다고, 필요한게 머냐고, 또 원한다면 저렴한 호텔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한시간이 넘도록 그 사람과 티격태격 댔었고 그 사람은 300루피짜리 호텔을 알려주겠다고 하고
우린 결국 따라가게 되었다.

아저씨는 오토릭샤꾼이었는데 운전중에 보여준 종이에는
아저씨를 거쳐간 수많은 한국인들의 칭찬 메세지가 담겨있었고
난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이윽고 도착한 호텔에서는 방값이 500루피라고 했다.
속았다라는 기분이 들 찰나에 바라본 아저씨는 주인에게 가서 조용하게
'한국아가씨들에게는 방을 300루피로 해줘라'라고 말을 하곤 떠났다.

우린 정말로 300루피에 묶었다.

여기 호텔은 어린 애들 두명과 젊은 애들 두명정도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언뜻보면 어설퍼 보였지만 마음은 정말 착한 아이들이었다.
바보같으면서도 순진한 아이들.

우린 다음날 새벽에 아그라에 가기위한 버스를 타러 갈때도
여기 호텔의 오토릭샤를 타고 갔다.
굉장히 먼 거리를 굉장히 싼 값에 태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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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무더운 날씨.

선풍기조차 고장나버린 우리 기차칸은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 더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것은 밤이였다는것.

인도의 기차는 연착은 당연한 것으로 봐도 괜찮다.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연착은 몇분 몇십분 정도 였지만 이곳은 달랐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무려 2시간을 그자리에 서 있었으며
어디서 내릴지를 몰라 잠도 깊게 들지 못하였고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가 있는 사트나에는 예정시간보다 4시 30분이 넘은 때에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를 놓칠것 같아 허겁지겁 달려간 터미널에서는

다행이도 아직 버스가 출발하지 않았고 우린 무사히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카주라호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식당으로 나섰다.

카주라호에는 한국식당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곳 식당들은 모두다 현지인이 한국인 여행객 또는 임의로 배운 음식 실력을 발휘하는 곳이었다.
배가 굉장히 고팠는데 내가 겁도 없이 주문한 라볶이는 무려 커리에 라면을 볶아서 내어왔다..

식사 후 맞은편에 있는 서부사원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율 때문이었는지 매표소에서는 달러는 받지 않았다.

서부사원군은 굉장한 모습이었다.
사원 안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되는데 거의 모든 사원은 비슷하게 생겼었다.


 



저걸 찍는데 단체 관광객이 잔뜩 들어와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찍게 된것.

 



 


 

 

 



카주라호는 섹스의 도시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여기 사원이 이런 모습으로 이루어 져서 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모습의 사원을 감상하던 사람들은 처음엔 건물을 보지만

시간이 지난후엔 다들 숨은그림찾기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이는 모습은 맑았지만 저쪽하늘에서는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가까운 사원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었는데 비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결국은 신발을 들고 사원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들어간 사원에는 우리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조용히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후 하나둘 얘기를 시작하더니 다들 노래를 함께 불렀다.

물론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보고만 있었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다들 웃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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